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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당화 안되면 입지 흔들/창당 1주년 맞은 국민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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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선패배후 갖가지 악재로 내우외환/총선때 돌풍 거울삼아 면모일신 노력
국민당의 1년은 정주영대표가 끊임없이 몰고다닌 화제성 「사건의 연속」이었다.
사건의 대부분은 정 대표 자신이 만들었으며 정치인과 건설업자간의 괴리에서 생긴 것이 많았다.
국민당은 1년전인 지난해 2월8일 정치집회장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런 한국종합전시장에서 화려하게 탄생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출범을 많은 국민들의 머리속에 각인시킨 것은 창당대회가 아니라 그보다 꼭 한달전에 있었던 폭로사건이었다.
92년 벽두인 1월8일 정치입문의 뜻을 조금씩 흘려 관심을 모아오던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청와대에 바친 정치자금을 폭로했다. 정 회장은 『극비사항인데…』라며 못이긴듯 입을 열어 박정희대통령때부터 노태우대통령때까지 냈던 정치자금의 액수를 밝혔다. 정 회장은 자신의 비기인 노 대통령에 대한 「정치자금폭로」로 단숨에 야당정치인으로 변신한듯 했다. 노 대통령의 약점과 당시 국민이 가려워 하는데를 정확히 긁었던 것이다.
곧이어 중앙당 창당에 필요한 지구당 창당대회가 시작됐다. 그는 여기저기서 양김 비난발언을 해 줄곧 화제거리를 제공했다.
기성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노골적인 언사였지만 기성정치에 식상한 국민들에게는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코미디언 이주일씨(정주일의원)의 탄압시비도 화제를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했다.
민자·민주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이삭」을 주워모아 현대그룹 차원에서 그림자처럼 지원한 14대 총선은 창당 보름만에 국민당을 원내 교섭단체로 급부상시켰다. 한마디로 정계에 「정주영 돌풍」이라는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돌풍은 대선으로 이어졌다. 3당중 가장 먼저 대통령후보로 나선 정 대표는 새벽시장 통을 돌면서 「서민풍」「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심기 시작했다.
총선직후 현대상선 탈세혐의로 측근이 구속돼 대선 준비작업이 다소 늦어졌으나 「정치적 탄압」이라는 동정적 여론도 일어 돌풍은 바람몰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정치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련된 정책광고 시리즈 등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건도 이어졌다. 가장 먼저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정 대표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업적(울산 현대산업단지와 서산간척지)에 대한 대규모 현장시찰이었다. 수백대의 버스를 동원한 사찰단이 현장을 둘러보았으며,오가는 길에 식사대접과 간단한 선물을 받았기에 「선심관광」의 혐의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대부분 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선 현대직원들이었다. 각지의 현대직원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좋은 사건도 있었다. 11월16일 오랜 교섭 끝에 새한국당과의 통합에 성공한 것이다. 이종찬·장경우 두의원이 빠졌지만 중진급의원 5명을 영입함으로써 「양김의 대안」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바로 다음날 김복동의원이 고속도로상에서 행방불명된 사건이 터졌다. 결론은 국민당 입당을 만류한 노태우대통령의 무리수로 밝혀졌으며,김 의원은 예정대로 국민당에 입당함으로써 「탄압받는 국민당」의 사기는 충천했다.
하지만 메가톤급 악재도 이어졌다. 선거를 보름 앞두고 현대중공업의 경리담당 여직원이 비자금의 국민당 유입을 폭로한 양심선언을 했고 정 대표의 인기는 급락했다. 현대라는 배경 속에서 출발한 국민당의 한계는 여전히 현대와의 관계 속에 드러난 셈이다.
국민당은 악재를 뒤엎기 위해 선거 1주일전 여의도 「백만집회」를 개최하고 이종찬후보의 영입을 자랑했다. 곧이어 선거 3일전 부산기관장 회식사건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도청이라는 비상한 수단을 통해 생생하게 폭로했다. 하지만 마지막 폭로는 예상과는 반대로 지역감정을 오히려 충동질하는 결과를 초래한 악재였다.
대선 결과는 예상보다 적은 3백80만표에 그쳤다. 대선패배의 충격속에서 정 대표는 이미 약속했던 「2천억원기금 조성의 백지화」「새한국당과의 통합백지화」등으로 계속 악재성 사건을 만들어갔다. 당국은 대선의 유산으로 수사를 계속했고 그에 따라 정 대표는 급기야 비밀출국 시도를 해 세인을 놀라게 했다.
정치자금 폭로로 시작된 국민당의 1년은 지난 6일 검찰의 정 대표 기소로 마감됐다. 국민당은 탄생 1년만에 총선의 성공과 대선의 실패라는 격동을 거쳐 새로운 재탄생의 진통을 겪고있는 중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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