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핵억제정책 불변/클린턴 취임이후 어떻게 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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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가장 큰 관심은 플루토늄 유무/의혹의 시설물 사찰거부에 불안/IAEA의 유엔통한 특별조사 적극 지원키로
한동안 잠잠했던 북한의 핵문제가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마찰,러시아 등 관련국에서 새로 밝혀진 정보 등에 의해 다시금 국제적 관심으로 부상하면서 클린턴 미 행정부의 중요 정책과제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해 두가지 시각이 공존했었다.
로버트 게이츠 중앙정보국(CIA) 전 국장 등은 미 의회 증언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개발이 임박했으며 적어도 올해에는 핵폭탄을 2∼3개 정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아래 북한에보다 철저한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위기론적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이 IAEA 사찰을 자진해서 받아들였고,조사팀에게 어디라도 공개하겠다고 호언하자 북한의 핵개발 진전이 그리 심각한 정도가 아니고 핵개발에 대한 의지도 강렬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낙관적인 견해도 나왔었다.
이 두 견해 가운데 노태우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측 교섭책임자들은 북한의 핵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미국의 CIA 등 관련자들은 종합적인 정보에 근거하여 한국정부의 낙관론을 경계하는 비관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금년에 접어들면서 북한의 핵개발 상황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근거들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북한의 핵문제가 다시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이 과연 핵폭탄의 연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얼마나 생산했느냐는 점에 있다.
북한은 IAEA사찰팀에게 재처리시설을 86년부터 일부 실험적으로 가동하여 몇그램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문제는 원자로의 가동기간으로 보아 북한은 훨씬 많은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유력했다.
IAEA사찰팀은 최근 정보에 의해 영변 부근에 북한이 플루토늄의 원료가 되는 핵폐기물을 저장하는 장소가 2곳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북한에 이의 공개를 요구했다.
또 현재 5메가와트 원자로의 핵연료 등이 과연 북한이 주장한대로 86년 준공당시의 연료인지 아니면 이미 사용을 다한후 새것으로 갈아끼운 것인지를 확인하기 원했으나 북한은 시설이 고장났다는 이유로 이러한 확인을 거절했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까지 원자로를 간헐적으로 가동해 핵폐기물이 아직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IAEA는 최근의 이라크 핵사찰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상대국이 신고한 시설물만 사찰이 가능해 효과적인 사찰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이라크가 IAEA의 사찰에도 불구하고 몰래 핵개발을 진전시켰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이 신고한 시설물만을 사찰할 경우 겉핥기가 되므로 신고하지 않은 핵폐기물장소를 보자고 요구한 것이다.
IAEA로서는 북한이 핵확산 제동 여부의 분수령이 된다고 믿고 있다. 북한에 이러한 특별사찰을 받아낼 경우 앞으로 핵개발 의심이 가는 이란·남아프리카 등에 대해서도 특별사찰을 요구할 수 있는 선례가 되며 실패할 경우 IAEA의 사찰이 유명무실해진다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따라서 IAEA는 유엔안보리를 동원해서라도 특별사찰을 받아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IAEA의 입장은 클린턴행정부의 입장과도 맞아 떨어진다. 부시행정부에 이어 클린턴행정부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핵확산 억제에 두고 있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IAEA가 유엔을 통해 특별사찰을 시도하려 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행정부가 북한의 핵문제를 당장의 이슈로는 삼지 않을 것이다. 클린턴행정부의 외교 우선순위는 현재 소말리아문제,유고사태,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결,중동평화회의 등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로 보아 아직은 덜 시급한 것이라는 얘기다.
또하나 동아시아 정책을 다룰 클린턴의 참모진이 아직 짜여지지 않아 이 문제에 대해 클린턴에게 정책건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형편도 안돼 있다.
미국으로서는 다른 지역의 급한 불을 끄고,보좌관 진용이 완비된 후에야 본격적인 검토를 할 것이다.
이 시기를 대개 팀스피리트훈련이 끝나는 3월말께로 보고 있다. 이 때까지는 부시행정부의 대북한 입장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최근 미 의회의 조찬기도회가 북한의 김용순 노동당 국제담당서기를 초청했으나 미 국무부가 비자발급을 해주지 않은 이유도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기존입장을 지켰기 때문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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