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회고록」내드리기 붐/“호화판잔치·해외여행만 효도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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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백70만∼4백80만원이면 3백부 발간/며느리·손자 글도 실어 “훌륭한 가족사”
노부모에게 「효도관광」해외여행이나 호화판 회갑·칠순잔치 대신 당신이 살아오신 한평생을 되돌아보고 자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해드리는 색다른 효도가 인기를 모으면서 전문출판업체까지 등장,새로운 유망사업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대기업총수나 대학교수·정치인 등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우리사회 일부 「특수계층」의 전유물쯤으로 여겨졌던 회고록이나 자서전·기념문집이 「일반 서민계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주)한국가족사연구원은 자서전·회고록만 전문적으로 펴내는 별난 업체다.
일반잡지 크기에서 단행본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판형으로 제작되고 분량도 조정할 수 있는 이같은 출간에는 1백70만원에서 4백80만원(3백부 기준) 정도의 비용이 든다.
최근 자식들이 앞장서 만들어드린 유흥종씨(74)의 자서전 『나의 삶 나의 가족』은 평범한 일반인들도 자신이 그려온 인생의 궤적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0쪽짜리 자서전에는 유씨의 약력·젊은 시절·결혼 등과 목재업을 하면서 겪은 경험 등 그가 살아온 한평생의 애환이 잔잔하게 술회돼 있으며 선영(조상묘)의 약도,집안의 주요제사일,제사상 차리는 법 등 후손들이 우리 뿌리를 잊지 않고 혼을 이어갈 수 있는 지침까지 담겨 있다.
또 친지 등의 축사는 물론 아내·아들·손자들이 남편·아버지·할아버지를 말하는 글도 실려있어 「가족문집」같은 느낌도 준다.
한국가족사연구원 대표이사 최지성씨는 『최근엔 자녀들이 부모에게 자서전을 펴드리는 것외에 제자들이 돈을 모아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자서전을 내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서전출간은 초고를 직접 작성해 가져올 경우 문장을 다듬어 주며 원고를 의뢰할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구술을 받아 글을 써주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11월 출판개시후 유씨외에 10여건의 실적을 올렸다.
연세대 윤진교수(심리학)는 『일반인들의 자서전출간은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60년대부터 시작됐다』며 『노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정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런 점에서 자서전출간이 노인들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진솔한 삶의 기록이 훗날 소중한 사료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의를 평가했다.<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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