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돈황시편 1-명사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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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가림(1943~)'돈황시편 1-명사산' 전문

백동(白銅)빛 해가
모래마루를 굴러다니던
그 여름 저녁답
빈 풍적(風笛)소리로 흐느끼던
명사산(鳴砂山)
마야부인의 젖무덤 같은 등성이에 올라
그대가
모래썰매의 앞날개가 되고
내가
뒷날개가 되어
호숩게 호숩게
노 저어 내려갈 때
나는 보았네
사람들이 언뜻 보았다고 믿었던
번갯불의 영원을
그 눈부신 현존의 한가운데
짜르르 가로질러 지나가던
캄캄한 섬광을



아시아 시인대회였지요. 그 핑계로 시안(西安) 둔황(敦煌)을 구경했지요. 모래가 운다는 명사산을 낙타 타고 가서 모래산을 올라갔지요. 모래가 되어, 모래언덕이 되어, 모래산이 되려고, 한사코 한사코들 기어올랐지요. 미끄러지며 엎어지며 자빠지며 뒹굴러 내려와보니, 이 시인은 모 여시인과 호숩게 호수워하였지요. 서언합니다. 눈부신 현존에서 번갯불의 영원을 체험하셨더이까?

유안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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