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서두르는 습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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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K씨(32)는 반복되는 부부싸움 끝에 부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첫 아이를 임신한 부인의 불만은 K씨의 ‘서두르는 습관’이었다. “저는 점점 몸이 무거워지는데 여전히 외출할 때면 빨리빨리 준비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요. 결혼 전의 불법 유턴과 과속하는 운전 습관도 그대로고요. 임신부가 타고 있으면 좀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 번 얘기해도 말 뿐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담해보니 K씨는 매우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일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그 다음 일을 생각했다. 여행을 가도 어떻게 하면 안 막히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일 뿐 정작 여행 자체를 편히 즐기지 못하는 편이었다.

 나는 그에게 “잠시 눈을 감고 심상을 통해 당신이 가진 시간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에게 시간이란 과거·현재·미래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영역은 작고 희미했지만 미래만은 유난히 크고 밝았다.  

 또 다른 직장인인 J씨(29세)도 항상 급한 것이 문제라 했다. 하지만 J씨가 조급한 이유는 K씨와 달랐다. 그는 일단 일을 미뤄 놓고 보는 편이었다. 그의 사전에 계획이란 없었다. ‘닥치면 하게 돼 있다’는 것이 생활신조에 가까웠다. 또한 눈앞의 재미나 편안함을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고 한다. 시험 전이면 혼자 여유를 부리다 막판에 가서야 혼을 빼놓은 사람처럼 바쁘게 굴었다. 벼락치기 인생이라고 할까?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방식이 점점 통하지 않게 됐다. 미루는 습관 때문에 곤욕도 몇 차례 치렀다. 그런데도 그의 미루기와 그 대가인 서두름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가고 있었다. 이제는 게임이나 케이블 TV를 보느라 아침을 뜬눈으로 맞아 허둥지둥 출근할 때도 많다. 그가 떠올린 시간에 대한 심상은 과거와 현재는 뒤엉켜 있었고, 다른 시간에 비해 미래는 유난히 작고 희미했다.

 시간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면 K씨는 미래초점형 인간인 반면, J씨는 미래부재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K씨의 삶에는 미래의 신속한 목표 달성이 중요했고, J씨에게는 오늘의 즐거움과 편안함이 중요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늘 서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실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정작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쓰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많은 현대인들이 시간의 연속성에서 벗어나 어느 한 시점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우리는 시간에게 고삐를 내주고 끌려가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과거·현재·미래의 다양한 시간대를 가지고 자기 삶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K씨와 나는 우수한 투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빠른 공만을 잘 던진다고 해서 훌륭한 투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수한 투수는 강속구가 아니라 ‘컨트롤’과 ‘체인지 업’을 잘 구사하는 선수라고 하였다. 야구 이야기를 하는 동안 K씨는 자신의 삶의 속도에는 빠름만 있을 뿐 느림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J씨와는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여러 작업 때문에 두개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J씨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현재와 미래라는 두 개의 창(窓)이 함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미래라는 창이 없이 늘 근시안으로만 살아왔음을 깊이 공감하였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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