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휴대전화 감청, 오·남용 차단이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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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합법 감청의 대상이 될 모양이다. 22일 국회 법사위에서 의결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다음달 2일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기술개발에 필요한 유예기간인 2년 뒤에는 휴대전화 통화 내용을 수사기관이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대로라면 통신·포털 업체들은 통화 내용과 인터넷 이용 기록을 1년간 보관해야 하며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수사기관은 필요할 경우 이를 열람할 수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한 위치정보도 감청 대상에 추가됐다. 개인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해 뭘 했는지, 어디로 이동했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 등 모든 개인 정보가 드러나게 된 셈이다.

 조지 오웰이 예견한 ‘빅 브러더’의 실체가 좀 더 구체화된 거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최근 급속한 통신환경의 변화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일로 보인다. 휴대전화 가입자(4100만 명)가 유선전화 가입자(2300만 명)를 추월한 지 오래며,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도 1400만 명에 달하는 등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기밀 유출 같은 첨단 범죄행위가 대부분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므로 수조원대의 피해를 눈 뜨고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수사기관의 볼멘소리도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수사기관의 감청 오·남용 우려를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휴대전화 감청 장비에 주요 인사 1800여 명의 전화번호를 미리 입력해 불법 감청을 하면서도 휴대전화는 감청이 불가능하니 안심하라는 신문광고까지 내는 대국민 사기극도 벌어졌었다.

 감청 대상을 테러·유괴·마약과 산업·경쟁 비밀 유출 범죄로 한정하고 불법 감청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 등 조항이 있지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국가기관의 도청을 완전 봉쇄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감청의 오·남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세부지침을 먼저 만들어 시행령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