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수 9단 국기 위 방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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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조 시대」속의 조·서 대결로 8백만 애 기 가들의 관심이 쏠렸던 국기 전 타이틀 5번 승부에서 타이틀홀더 서봉수9단이 도전자 조훈현 9단을 물리치고 자신의 유일한 우성인 국기 위를 지켜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11월11일 서울 라마다 올림피아호텔에서 벌어진 결승 5번 승부 제4국에서 집 흑의 서 국기가 2백48수만에 13집 반을 남겨 토틀 스코어 3승l패로 방어에 성공한 것.
타고난「승부사 기질」과 독특한 개성으로「단병전의 제일인자」이면서도 숙적 조훈현의 벽에 막혀 기생유하생량(하늘이여. 이미 주 유를 낳고 어찌하여 또 제갈량을 낳으셨습니까)이라는 주유의 앙천탄식처럼 지난 10여 년간 랭킹2위에 머물러 왔던 서 9단이 이른바「서훈현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상이어서 주목된다.
올해 들어 대 조훈현 전적은 7승3패로 단연 앞서고 있는데 그중 4승이 큰 승부(도전자 결정 국 1승+타이틀 3승)에서 거둔 것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이는「현장실습」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서 9단은 매일같이 한국기원에 나와 다른 고수들의 실전을 연구한다. 정작 본인은『갈곳이 없어서 일뿐』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보통 집념이 아니다.
이번 국기 전을 돌이켜보면서 9단이 근래에 보기 드물게「기가 살아 있는 운석」을 바탕으로 대범하게 국면을 운영해 제1, 2국을 악 승함으로써 단숨에 조9단을 막판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제3국을 서두르다가 자멸했으며, 제4국 역시 페이스를 잃고 패색이 짙어 우려의 소리가 높았으나 서9단이 패 귀에 흘렸음인가. 갑자기 착각을 일으킨 데 힘입어 망 외의 1승을 추가할 수 있었으니 운까지 따라 주었다 할까.
숙적의 대결에서는 이러한 의외성이 곧잘 나타나는 속성이 있다. 지나친 라이벌의식으로 서로 흥분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드러매틱한 역전 극입니다.』어느 관계자의 찬탄처럼 상승세일 때는 운도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기칠운삼이라 하지 않던가. 아무튼 제4국의 역전승은 서9단에겐 행운이었다. 만약 2승 후에 2패를 기록했더라면 거꾸로 쫓기는 심리상태가 되어 제5국마저 위태로웠을 터이니까 말이다. 『손이 옆으로 나가는「덜컥수」로 버려 놓은 바둑이었다. 승부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서 9단의 국 후 소감.
-요즘 컨디션이 최고인 듯한데.
『맞아요. 운과 기가 상통합니다. 기가 살아나요.』
-묘방이 있나요.
『10여 년 2 등 이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비우게 한 듯 해요. 자세가 더욱 굳은 듯 합니다.』
그 때문인가. 그는 28일 열린 조치훈 9단과의 응씨배준결승 3번 승부에서 짜릿한 승리감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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