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무 “금리인하”에 금융계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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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실세금리 격차 커 부작용/「재할」은 낮춰도 효과 미흡
대형 금융사고로 금융계가 휘청대고 있는 가운데 20일 이용만재무장관이 한은 재할금리를 포함한 여수신 금리를 연내에 내리겠다는 뜻을 밝혀 금융시장이 다시 크게 술렁이고 있다. 현재 조순 총재가 해외출장중인 한은은 그간 인위적인 금리인하에 줄곧 반대해왔었고,또 이번 금융사고는 규제금리와 시장금리와의 격차에 근본 원인이 있으므로 차제에 금리자유화를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도 당국이 한편으로는 금리를 끌어내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무리한 수신경쟁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은 금융논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내심 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 주변에는 또 다른 상황논리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성장은 당초 예상보다 급냉하고 있고,여기에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조직개편이나 금융산업혁신에 대한 논의가 이곳 저곳에서 나오면서 금융이 걸핏하면 도매금으로 「도마」위에 오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금리자유화 1단계 조치는 마침 21일로 꼭 1년이 됐는데 금융시장은 어느때 보다도 어수선한 것이다.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자살사건이 무리한 수신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격지어지면서 금융계에는 금리자유화를 차근차근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 이 지점장 개인에게도 있지만 실세금리와 규제금리의 차이가 여전하고 1,2금융권 사이의 금리격차가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신경쟁을 하다보면 이돈 저돈 가리지 않고 마구 끌어들이는 변칙적인 수법을 쓰게 되는 제도적 문제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는 진단에서다.
따라서 이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실세금리와 규제금리의 차이를 점차 줄여나가는 금리자유화의 점진적 시행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 자칫 먼저 일부 규제금리를 낮췄다가는 또다시 실세금리와 규제금리의 격차를 더욱 벌림으로써 자금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자살한 이 지점장은 무리한 수신경쟁끝에 양도성예금증성(CD)를 빼내 유통시키기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CD는 탄생과정부터가 금리의 2중구조에 그 배경이 있다. 다시말해 제2금융권에 비해 은행들의 수신이 자꾸 줄어들자 사실상 은행의 금리를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했던 것이 CD다. 또 총통화(M2)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는 파행적 통화관리의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결국 CD란 파행적인 금리구조와 통화관리의 산물로 볼 수 있는데,이 지점장이 이 CD를 이용해 예금을 늘리고 자금을 조성하다가 죽음에 이른 것이다.
금융계는 이번 지점장 자살사건과 가짜 CD파문으로 CD를 통한 예금조성마저 어려워진 상황인데 예금금리를 낮춘다면 은행권의 예금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예금금리는 그대로 놓아두고 대출금리만을 낮추는 방법도 있는데 이 또한 은행의 부실자산이 더욱 늘어나고 경영이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국은행이 자금이 부족한 은행에 대해 그 은행이 기업으로부터 할인해 사들인 상업어음을 다시 할인해주는 재할인금리를 낮춰 은행이 기업 등에 대출해주는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한은관계자는 『한은에서 은행에 해주는 재할인규모를 10조원,시중은행의 대출금액이 90조원 정도이므로 재할인금리를 1%포인트 낮추면 은행대출금리는 0.1%포인트 정도,재할인금리를 0.5%포인트 낮출 경우 은행대출금리에는 0.05%포인트정도의 인하효과가 생기는데 그친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출국,오는 29일에 귀국할 에정인 조순한은총재는 그동안 인위적 금리인하보다는 금리자유화의 단계적 시행을 강조해왔다. 조 총재는 지난 11일 이용만재무부장관과의 모임에서도 이같은 논리를 펴며 서로의 입장을 정리했었다. 그런데 이 장관이 조 총재가 국내에 없고 당장 금리를 낮추지도 않으면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은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조 총재는 최근 일부에서 금리인하를 포함한 경기부양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질 정도로 경제안정화시책에 소신을 갖고 있어 금리인하 문제는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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