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외교경험 솔직히 썼죠"|『대통령을 그리며』낸|전 외무부장관 이동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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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의외로 반응이 좋고 쭉 베스트셀럽니다. 잘 팔리니까 좋아요.』
지난 9월『대통령을 그리며』란 회고록을 출판한 이동원 전 외무부장관은 자신의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촘촘한 체크무늬의 콤비정장에 빨간 넥타이, 검은 테 안경을 쓴 이전장관에게서는 전혀 65세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게 건강하고 화려한 멋이 풍겼다.
개인연구소인 서울 평창동 산기슭의 국제학술연구원에서 기자와 만난 이전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은「비교적 솔직히」쓴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즘 글쓰는 분들은 어렵게 쓰는 것 같아요. 그러나 나는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쓰려고 했어요.』
현재 일본의 문예춘추 사와 아사히신문사에서 일본어판을 내기 위해 교섭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에서 출판하면 책이 많이 나가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서를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새로 책을 쓰고 계신 것은 없습니까.
『「한국과 세계」라는 주제로 에세이형의 어려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목은『개국』이 될 겁니다. 우리나라가 나라다운 나라의 역할을 시작한 것은 45년 해방이 되면서부터 아닙니까. 그 이전에는 식민지였고 말이죠. 그 후부터 지금까지 국제상황에서 한국의 존재, 발전, 나아가야 할 길을 종합해 쓰고 있는데 재료는 상당히 모아 놓았어요. 처음 부분을 썼더니 양이 너무 엄청나 정리해야겠는데 2∼3년은 걸리지 않겠나 싶습니다. 저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요즘도 매일 새벽 일어나서 저것만 뒤지고 있어요.』
이전장관은 외교관 생활에서 몸에 익은 듯 계속 사람 좋은 허허 웃음을 흘리며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7∼8개의 원고지뭉치를 가리켰다.
이전장관은 5·16직후 대통령비서실장에서 시작해 태국대사, 외무장관에 발탁돼 한일회담, 월남파병, 한미행정협정 등 주요 외교 현안을 주도하고 7, 8, 10대의원을 거치는 동안 외국의 지도자들과도 무수한 교분을 쌓아 왔다. 바로 옆으로 불어 있는 연구소 회의실 창가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내외를 비롯해 이때 가까이 접촉했던 세계 지도자들의 사진이 액자에 넣어져 나란히 진열돼 있다. 또 나머지 공간들에는 빼곡이 책이 꽂힌 책장이 들어차 있다.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이시는데 비결이 뭡니까.
『저는 원래 등산을 좋아해요. 이리로 이사온 것도 산이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산에 올라갑니다. 또 겨울이 되면 스키를 좋아하고 가끔 골프도 치는데 골프는 수준 급이 못돼요. 핸디 20정돈데…. 겨우 남에게 방해나 면한 정도죠.』
-이전장관께서 박 전대통령에게 발탁된 것도 옥스퍼드박사라는 점이 중요한 계기인 걸로 아는데 한국에 동문회는 없나요. 『케임브리지 대학과 합한 옥스브리지 소사이어티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국대사를 위시해 대사도 여러분 있고, 우리나라에 옥스퍼드졸업생은 아니라도 다녀온 분은 많아요. 제가 회장인데, 가끔 모입니다.』
-클린턴 미대통령당선자도 옥스퍼드 유학생인데 동창회를 통한 연계는 없습니까.
『나는 클린턴을 잘 몰라요. 그런데 클린턴의 톱 브레인들이 거의 다 로즈 장학생이에요. 우리도 여기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정치란 인맥이고 사람을 잘 잡아야 합니다. 나도 외무장관시절 당시 국무장관 딘 러스그, 동아 태 차관보 윌리엄 번디, 이런 분들이 다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인연으로 덕을 많이 봤죠.』
-외국에는 자주 나가시나요.
『1년에 3분의1은 외국에 나가 있습니다. 올해도 미국에 두 번, 유럽·중국에 나갔었고 일본에도 두 번 나갔다 왔고…. 외국에는 주로 강의하러 다녀요.』
-국내에서도 강연을 자주 다니시는 걸로 아는데….
『대학에도 다니고 친목기관에도 많이 가고 특별한 모임, 경영인대회 같은 곳에도 나갑니다.』
그는 주로 한국의 외교문제에 대해 강연해 줄 것을 요청 받고 있다. 특히 근년에 가장 관심을 끈 북방외교라든가 중국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 등 이 주로 거론되는 주제다.
그러나 현재 작업중인 에세이집만큼이나 그의 관심은 우리 외교 전반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전장관은 후배외교관들의 외교에 대해서도 매우 직선적으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외교는 북방외교시대를 지나 이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의 외교방향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어떤 점을 지적하고 싶으신 지요.
『외교는 앞으로 좀 더 상식적으로 하고, 정상적으로 해야 합니다. 북방외교라는 것은 아주 비상식적으로 했어요. 외무부가 해야 하는데…. 외무부는 메신저 역할이나 하고 있어요. 둘째로 외교는 정당하게, 당당하게 해야지 돈 보따리로 하는 것은 촌스럽고 실리도 없어요. 또 중국과 관계정상화를 했지만 너무 서둘렀고, 우리 옛친구인 대만을 너무 섭섭하게 하지 않았나 말이죠. 외교는 신의가 있고, 의리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경박하게 굴지 않았어요.』
이 전 장관은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최근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연구소위에 있는 살림집에는 이전장관과 부인 이경숙씨 단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 최노애씨(90)는 서대문 본가에 기거하고 있고, 딸과 아들은 미국에 산다.
딸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변호사 남편과 결혼해 교편을 잡고 있고, 아들은 올해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동경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내년 8월부터는 버클리 대학에 교수자리를 얻을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 최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영학원은 사실상 부인 이씨가 운영하고 있는데 한영 중·고등학교와 특수영재 교육학교인 한영 외국어고등학교 등.
또 경기도 광주에 동원전문학교 설립을 허가 받아 내년 봄에 기공식을 갖고 94년에는 개교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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