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채인택 런던취재기 #9]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 걷기 길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늘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 걷기 길(Diana Princess of Wales Memorial Walk)’을 한번 걸어봅시다.

걷기 좋은 숲과 공원으로 가득찬 런던 도심
영국 런던의 중심지는 거대한 녹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이드 파크입니다. 도시의 허파 격이지요. 앞으로 서울의 용산 미군기지가 한국에 반납되면 거대한 녹지와 숲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봅니다. 풍부한 녹지를 갖춘 도시가 진실로 복된 삶의 터라는 생각입니다. 런던 도심은 걷기 좋은 숲과 공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이드 파크의 그 서쪽에 ‘켄싱턴 가든’이라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공원이 붙어있습니다. 가든이라지만 이름만 정원이지 규모와 실제 운영상으론 공원입니다. 꽃이나 관목이 많고 아기자기하면 가든이라고 붙이는 게 맞겠지요. 그곳에 다이애나가 결혼 뒤로 살았던 켄싱턴 궁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디아내나 추모 걷기 길은 런던 중심부의 녹지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켄싱턴 가든-하이트 파크-그린 파크-버킹검 궁전-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이어지는 11km 길이의 ‘순환’ 걷기 길입니다. 다이애나의 삶과 관련이 있는 곳을 연결하는 걷기 길이기도 하지요. 길 바닥에 90여 개에 이르는 표지(플라크; plaque)가 붙어있습니다. 도로 표지판도 추모 걷기 길을 나타내고 있고요. 영국 언론들은 이 추모 걷기 길을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도심 공원 산책로의 하나’라고 칭찬하더군요.

다이애나 길


다이애너의 삶의 궤적 따라 걸어보는 ‘다이애너 추모 걷기 길’
이 길은 순환길이라 어디에서 시작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추모 걷기 길의 출발지는 다이애나가 1981년 결혼했을 때부터 97년 불행하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켄싱턴 궁전이 좋겠지요. 17세기에 처음 지었다는 이 궁전은 켄싱턴 가든과 붙어 있어 풍광이 기가 막힙니다. 다이애나가 변장을 하고 경호원만 데리고 나와 켄싱턴 가든에서 롤러 블레이드를 타거나 조깅을 즐겼다고 합니다. 산책을 즐겼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이 정원과 궁전은 다이애나가 드문 행복을 누렸던 곳이지요.
97년 9월6일 다이애나는 이 궁전에서 왕실 장례 마차에 실려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이애나 신드롬의 시작과 끝이 이곳에서 이뤄진 것이지요.

→ 켄싱턴궁 입구


추모의 바다였던 켄싱턴 궁전
검은 색과 금색으로 칠해진 대문이 있는 켄싱턴 궁전 남쪽은 유명한 곳입니다. 다이애나의 세상을 떠난 직후 그를 추모하는 조화와 메모, 장난감, 인형이 바다를 이뤘던 곳이 여기입니다. 지금도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꽃과 메모를 놓고 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일종의 신드롬이지요. 사람들의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는 다이애나를 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다이애나 컬트’의 현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다이애나가 일종의 대중문화 코드가 됐다는 뜻입니다만, 글쎄요.

아름다운 걷기로 하이드 파크를 관통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켄싱턴 궁전의 동쪽은 그 유명한 하이드 파크입니다. 런던 중심부 공원 가운데 가장 큰 곳입니다. 이곳이 일반에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군요. 그 전에는 사냥터였고요. 가운데에 길쭉한 호수가 있으니 걷기에다 보트 젓기를 결합한 퓨전형 공원 즐기기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새는 많은데 물이 그리 맑아 보이지는 않아서…
기분 좋은 산책로, 잔디밭을 함참 걸어 하이드 파크를 동서로 관통하면 공원 서남쪽 끝에 누구나 마구잡이 연설한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스피커스 코너’가 나옵니다. 그 뒤쪽으로 빠져 공원 밖으로 나와 전승 기념물을 왼쪽으로 보면서 자동차로 복작거리는 하이드 파크 코너를 건너면 그린 파크로 이어집니다. 하이드 파크만 산책해도 걷는 기쁨이 대단합니다. 아름다운 공원을 걷는 것은 행복, 그 자체니까요.

다이애너 친정인 스펜서 가문의 저택을 바라보며 걷기
그린 파크는 다이애나의 친정인 스펜서 백작 가문의 런던 저택이던 스펜서 하우스와 마주보고 있습니다. 다이애나 추모 길이 이리로 이어진 이유입니다. 네오클래식 스타일의 이 건물은 18세기에 1대 스펜서 백작이 지었답니다. (디이애나의 부친은 8대 스펜서 백작이었습니다. ) 당시 런던에서 가장 멋진 저택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부턴 스펜서 가문이 거주하지 않고 극장이나 클럽, 사무실로 세를 놓았다고 하네요. 2차대전 때 공습으로 많이 손상된 뒤 로드차일드 가문과 공동으로 복구한 뒤 지금은 연중 대부분 일반에 공개된다고 합니다. 가끔 상류 사회의 행사 장소로 빌려준다고 합니다. 현재 귀족 소유의 유서 깊은 건물은 대부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답니다. 유서가 깊지 않은 부동산은 임대용으로 돌리고 있지만요.

→(계속) [Walkholic 채인택 런던취재기 #9] 다이애나 왕세자비 추모 걷기 길②

채인택 기자

[관련화보]사진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