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햄 소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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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얼마 전만 해도 도시락에 소시지를 반찬으로 싸오면 부잣집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소시지는 우리의 순대나 머릿고기 처럼 살코기를 먹을 수 없었던 서양의 가난한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든 음식이다.
재료도 독특한 풍미와는 전혀 딴판으로 소나 돼지의 각종 내장과 비계, 심지어 골·혀· 귀까지 곱게 간 뒤 삶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1915년 조선축산이라는 일인회사에서 소량 생산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일본인의 양식파티용으로 거의 소비됐을 뿐이며 일반인에게는 6·25때 미군깡통을 통해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이때는 소시지뿐 아니라 돼지의 살코기를 소금에 절인 뒤 나무연기를 쐬어(훈연)만드는 햄까지 미군부대를 통해「부대고기」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흘러나와 오늘날「부대찌개」의 원조가 됐다.
그 후 군납위주의 군소 회사 몇 개가 국내에 생겼다가 63년 진주햄(당시 평화상사)이 설립되면서 67년8월부터 본격적으로 소시지제품을 시중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비닐 포장된 제품을 손가방에 넣어 오늘날처럼 일반상점이 아닌 정육점을 돌아다니며 판촉을 벌였고, 정육점에선 진열장 위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하나씩 떼어 팔았다.
초기에는 가격도 비싼 편이라 판매가 부진했으나 70년대 들어 생선살과 전분을 대폭 포함시켜 제품단가를 떨어뜨린「마미 소세지」「참맛 소세지」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급성장을 이뤘다.
특히 신동우화백의 만화로 대변되는 광고를 통해 소시지를 어린이 간식용으로 자리잡게 하기도 했다. 80년까지 국내 육가공 시장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던 진주햄은 제일제당과 롯데의 잇따른 시장참여로 경영난에 빠졌으나 85년 조양그룹이 이를 인수, 막대한 설비투자를 통해 실세회복에 힘쓰고 있다. <이행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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