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시골서 백악관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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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다섯 난쟁이」중의 하나/잇단 병역·여성 스캔들로 휘청/13개월만에 정상에 우뚝
중앙정치무대의 초년병이나 다름없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출마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해 8월15일이었다. 13개월후 그는 미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우선 무엇보다도 자신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그는 폴 송거스,톰 하킨 등 다른 후보와 함께 조지 부시 현대통령에게는 상대가 안되는 「다섯 난쟁이」중 하나였다.
그는 민주당 예비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휘청거렸다. 지난 1월말 나이트클럽 가수출신인 제니퍼 플라워스가 12년간 그와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2월에 들어서자 징집을 기피했다는 구설수가 뒤따랐다. 69년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당시 징병담당관에게 편지를 내 현역징집을 면했다는 것이었다. 2월18일 민주당 예비선거중 가장 먼저 실시된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클린턴은 폴 송거스에 이어 2위를 차지,초반의 스캔들을 딛고 후보경선에 계속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주일뒤 조지아 예비선거에서 드디어 1위를 차지,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승리 행진을 계속,측근들조차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도 승리를 낚았다.
3월10일 「슈퍼 화요일」 예비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을 훨씬 제쳐 그의 민주당후보 확정은 결정적인 것으로 보였다.
뉴욕전당대회에서 승리한후 클린턴은 비로소 부시와의 결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캠페인은 다시 혼돈으로 빠져 들었다. 갑자기 백만장자 로스 페로가 대통령선거에 뛰어들어 일대 돌풍을 몰고 온 것이다. 6월2일 클린턴의 민주당후보지명이 확정됐을 때 그의 지지율은 페로에도 뒤지는 3위였다.
7월16일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공식 지명된 클린턴은 앨 고어 상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이날 페로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인기는 계속 치솟아 투표일 직전까지 부시후보를 계속 리드했다.
클린턴은 지금까지 겪었던 수차례의 위기를 만나면서 스스로 『내 사망기사를 여러차례 썼었다』고 실토했다.
시골의 젊은 정치인이 백악관 주인으로 등장하기까지 지난 13개월간 클린턴의 역정은 숱한 위기를 변화에 대한 비전과 젊은 열정·지성으로 극복한 한편의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곽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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