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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41. 허정구 회장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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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허정구(左) 한국프로골프협회 초대 회장이 1975년 미국에서 열린 제16회 세계시니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제럴드 포드 미 대통령과 포즈를 취했다. [대한골프협회 제공]

1754년 창립한 영국왕립골프협회(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골프클럽이다. 일반적으로 'R&A'라고 하는 이 골프클럽은 미국골프협회(USGA)와 함께 골프 관련 모든 규칙을 만들고 심사.관리하는 곳이다.

골퍼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이 클럽에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한국인은 단 두 명이다. 고 허정구 한국프로골프협회 초대 회장과 그분의 셋째 아들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다.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허광수 회장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3년 이 클럽의 회원이 됐다.

허정구 회장은 LG그룹 공동 창업자인 고 허만정씨의 장남이다. 허 회장은 한국 골프사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창설했고, 몇몇 기업인과 힘을 모아 남서울컨트리클럽을 만들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R&A 회원이 된 것이다.

허 회장 역시 내가 골프 입문 때부터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만난 골퍼 가운데 한 명이다. 1960년대 초 삼성물산 사장을 지낸 허 회장은 퍼팅의 달인이었다. 내가 퍼팅이 잘 안 될 때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떻겠나"라고 조언해줬다.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조언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허 회장의 퍼팅 실력은 나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69년 안양컨트리클럽 헤드프로를 그만둔 뒤 1년 반 정도를 무적(無籍)선수로 활동했다. 71년 10월 개장한 남서울컨트리클럽 조성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나는 허 회장의 요청으로 골프장 건설에 상당히 깊이 관여했다. 오르막인 인코스 14번 홀(파5) 페어웨이 왼쪽에 벙커를 만든 것도 내 아이디어였다. 허 회장이 그 홀의 거리가 너무 짧다고 해 드라이버샷이 떨어지는 지점에 트랩을 설치, 마음대로 장타를 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18번 홀 그린을 이중으로 만든 것도 나였다.

골프장 개장을 앞둔 어느 날 허 회장이 나를 불렀다.

"남서울에서 나와 함께 지내자."

나는 그때부터 78년까지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소속 선수 겸 헤드프로로 활동했다. 연습장.프로숍.매점 운영도 모두 내가 맡았다. 72년 일본오픈 우승 때 내 소속은 남서울컨트리클럽이었다.

지금 남서울컨트리클럽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골프장이다. 그러나 70년대만 해도 가는 길이 비포장이었으며, 회원권 분양도 신통치 않아 적자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허 회장은 한때 매각을 검토했다.

그러나 나의 일본오픈 우승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허 회장의 집안 형인 허철구씨가 일본에서 회원권 분양에 성공한 덕분에 골프장 경영이 정상화됐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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