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안 되면 어떡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호 14면

"The way we were"를 비롯해 수많은 곡을 히트시켰던 미국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65)가 세운 여성가수 최다 음반판매 기록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런 그도 27년 동안이나 무대에 서지 못했다는 놀라운 사연이 있다. 20대였던 1967년 스트라이샌드는 공연 중에 노래 가사를 잊어버려 극도의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후

‘또 실패할까’ 두려워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 1994년이 되어서야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섰다.

무대 공포증은 ‘수행불안(performance anxiety)’의 한 종류다. 특정한 일을 수행할 때 실패가 두려워 긴장상태에 빠지면 불안감에 가슴이 뛰고 경직되는 등 신체의 기능을 뜻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완전히 일을 망치게 된다.

성기능장애 남성들 중에도 스트라이샌드처럼 수행불안을 겪는 경우가 꽤 많다. 최근 필자가 만난 30대의 T씨도 수행불안 때문에 성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었다. 과로에 음주까지 한 상태로 성행위를 시도하다가 발기가 안 된 적이 있던 T씨는 그날 이후 또 발기가 안 될까 끊임없이 두려워했다. 그런데 실제로 성행위를 시도할 때마다 발기가 되다가도 쉽게 수그러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위할 때는 예전처럼 발기가 잘 됐고, 신체검사를 해봐도 이상이 없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20~30대 환자의 대부분은 심인성 발기부전, 즉 수행불안으로 발기가 안 되는 경우다. 이에 반해 40대 이후의 남성들은 신체적인 원인이 더 우세하다. 하지만 신체 문제가 주 원인인 경우에도 처음 발기에 실패한 뒤 수행불안이 겹치면 발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수행불안은 누가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더 심해진다. T씨에게 침대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부담스러운 무대이고, 아내는 자신을 평가하는 관객인 셈이다. 즐거워야 할 성행위를 아내를 만족시켜야 하는 임무라고 느끼면 발기는 힘들다.

긴장을 풀고 성적 흥분에 자연스레 몸을 맡겨야 발기가 될 텐데, 수행불안이 이를 가로막는다. 이는 마치 불면증이 있을 때 잠을 억지로 자려고 애쓰면 오히려 잠이 더 오지 않는 이치와 비슷하다.

T씨 같은 남성들은 초반에 발기가 좀 되더라도 곧 수그러들까 두려워 서둘러 삽입을 시도하는 탓에 아내의 불평도 크다. 또한 억지로 몸에 힘을 줘서 발기를 시키려고 들면 역효과가 난다. 늪에 빠졌을 때 허우적거리면 더 빠지는 꼴이 되는 것이다.

T씨는 수행불안을 다스리는 심리치료와 관능 초점 훈련(단계별로 정상적인 성 반응을 유도하는 치료기법)으로 자연스러운 발기능력을 되찾았다. 심인성 발기부전은 제대로 치료하면 정상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기유발제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성생활에서 수행불안이 깊어지면 나중엔 아예 성관계 자체를 기피하게 되기도 한다. 노래의 달인이라는 스트라이샌드도 수행불안 때문에 무려 27년이나 무대를 기피했던 것처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