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가을 맞이 상설야외무대」표정|가을비속 뜨거운"춤의 교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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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가을비가 한두 줄기씩 흩뿌리는 7일 오후4시30분 서울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앞 가설무대.「춤의 해」운영위원회가 마련한 「가을 맞이 상설 야외무대」가 첫선을 보이는 자리여서인지 넉넉하게 여겨지는 마로니에공원의 분위기에 비해 다소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람결을 타고 간간이 들려오는 기타반주의 노래 소리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앰프의 불륨을 마냥 높여대던 주최측의 안간힘도 이젠 끝. 새하얀 발레복으로 몸을 감싼 19명의 발레리나들이 3조를 이루어 무대에 올랐다. 김민희 무용단의 『헨델을 위한 무브먼트』가 시작된 것이다.
가을 맞이 상설 야외무대. 춤 관객의 저변확대를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 행사는 세팀이 한 조가 돼 이틀씩 공연(오후2시반·4시반)하는 상설 야외무대로 모두 30개 무용단이 출연, 28일까지 계속된다. 7일은 그 첫째무대였다.
탁 트인 도시 공간이 가져다주는 여유 때문일까. 빗방울이 내려앉은 무대에서 아차 실수로 미끄러지는 무용수에게도 관객들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마로니에공원에서 늘 만날 수 있던 초상화를 그리는 무명화가도 오늘은 일찌감치 영업(?)을 때려치우고 발레리나의 스케치에 여념이 없다.
두번째 공연인 가림다 현대무용단의 『벽』이 시작될 무렵 이미 가설무대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무대 전면에 위치한 몇몇 관객들은 젖은 땅에도 아랑곳없이 아예 털썩 주저앉았다. 인근 사무실에서 퇴근을 하는 듯한 넥타이 차림의 신사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무대를 응시한다. 평소 공연인구의 절대 다수를 점하는 것이 여성인 것과는 달리 야외 공연의 관객들은 거의 80%가 남성이어서 무척 이채롭다.
15분간에 걸쳐 남녀무용수들이 고통받고 억눌린 인간들이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절규를 묘사한 역동의 무대가 끝날 무렵 관객들은 비로소 뭔가를 알 것 같다는 듯 얼굴의 근육을 풀며 열렬한 박수를 쳐댄다.
인천시립무용단의 『사물놀이』를 끝으로 한시간 동안 진행된 야외무대는 다음날 오후5시를 기약하며 천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연을 감상하던 한 대학생(성신여대 2년)은『무용공연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면서 특히 현대무용에 호기심을 보였다. 시험을 치르고 학원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친구와 함께 야외무대를 찾은 정규희군(한양공고1년)도 『지금까지 무용이라면 자신과 상관없는 낯선 것으로 여겼으나 막상 공연을 보고 나니 공감이 간다』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무용공연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일규씨(「춤의 해」기획추진실장)는 『야외무대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용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극장에서와는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날 공연은 프로의 면모를 보여 주기에 다소 부족했던 것이 옥의 티. 따라서 앞으로의 야외무대는 공연의 질을 높이는 것이 과제로 보여진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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