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내각다운 엄정한 기풍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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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중심제하에서 중립선거관리 내각이란 특이한 정부가 9일로 정식 출범했다. 비록 외형으로는 대부분의 각료가 유임되고 총리·안기부장과 4명의 장관이 바뀐데 불과하지만 새 내각은 과거의 어떤 내각과도 전혀 다른 새로운 기준과 새로운 요구에 의해 성립된 내각이다. 따라서 새 내각에는 당연히 새 기풍과 새 스타일의 면모가 있어야 하고,유임된 구면의 장관들 역시 새 내각에 부합되는 자세와 다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현승종 내각의 운영과 역점사항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표명한바 있지만 새 내각의 성공적 과업수행에는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새 내각은 독자적 정치기반도 없고 특정 정치세력의 지원도 없다. 남은 넉달사이 업무파악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스럽다. 힘없는 정부,약체내각이 안될래야 안되기가 어렵다.
이런 악조건속에 맡은바 가장 큰 과제인 대선의 엄정·공명한 관리를 해내자면 지나친 주문인지 모르겠으나 새 내각에 「추상 같은」기풍이 느껴져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 대선까지 수 없는 위법·불법·탈법이 판을 칠 것이다. 선거에 임하는 정치세력들은 걸핏하면 힘없는 새 내각을 깔보거나 도전해올 가능성도 다분하다. 새 내각이 만약 추상같이 엄격하고 단호한 자세로 여기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중립내각이란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따라서 새 내각은 법과 사리에 따라 어떤 당이든,어떤 인물이든 추상같이 다루고 예외를 두거나 타협을 해서는 안된다. 이래야만 중립내각에 대한 국민신뢰도 생기고 힘도 얻게 될 것이다. 결국 새 내각의 가장 큰 무기는 법일 수 밖에 없으므로 정부는 대선법의 조속한 개정을 정치권에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한 일은 산하 관료와 관변단체의 중립확보를 위한 조치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중립내각이 들어섰다고 하루 아침에 전 공무원이나 관변이 중립으로 돌아설리는 만무하다. 기강을 확립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에 시급히 착수해야 한다. 특히 경찰·일선 행정기관 등에서 오랜 당·정 유착의 관행이 음으로 양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므로 강력한 복무지침을 시달하고 철저한 감시·감독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내무·법무 등 선거 관련 부호뿐 아니라 경제부처를 포함한 정부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기회에 특히 신임 안기부장에게 당부하고 싶다. 신임부장이 재임할 기간이 비록 4개월여 밖에 안될지 모르나 그 4개월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기부가 선거에 간여하지 않고 정치중립을 지킨다는 실증을 우선 보여야 하고 안기부 스스로 이미 선언한 「새 안기부」의 산파역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기간의 재임이 될지 모르나 이 두가지 일만 잘 해낸다면 큰 업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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