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부분규로 시민 괴롭히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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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택시 노조대표들이 임금 협상과정에서 매수되었다는 의혹이 깊어지면서 어제 서울의 택시 2천여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가뜩이나 정치권이 불안하고 행정공백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민심과 도심 교통을 교란시키는 택시노조의 차량시위 행위는 이유여하를 떠나 있어선 안될 일이라고 본다.
전국택시노련 서울시 지부가 지난 14일부터 제기하고 있는 교섭위원 6명의 매수혐의는 그중 한명이 이미 양심선언을 통해 사용자측의 향응제공과 도피자금 수수를 시인했다니 노조측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혹 정당한 이의제기를 함에 있어서도 그 수단이 차량시위와 같은 낡은 방식으로는 호소력을 얻기 힘들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정당한 항의마저 시민들의 불만으로 오도될 소지가 있음을 노조측은 헤아려야 할 것이다. 30일께 제2의 차량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니 반드시 철회하기를 바란다.
이번 택시노조 노사간의 협약결과만 보아도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풍긴다.
사용자측에 유리한 사납금은 인상되고 노조측에 유리한 성과급제나 기본급제는 폐지되거나 동결되었다. 대도시 택시문제의 해결방안은 완전월급제가 정도라고 주장해온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의 협상결과는 그 반대로 끝이 났으니 교섭의원들에 대한 의혹이 짙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노조에서 교섭위원들이 노사협상과정에서 돈을 챙기고 호화 사치의 향응을 받아가며 이른바 노동귀족처럼 행세하는 추악한 풍토는 차제에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제기된 이 매수의혹의 진상을 자세히 밝혀 이미 체결된 협약의 유효 무효화를 판정함으로써 택시업계의 질서를 바로 잡고 노사간의 검은 유착을 척결하는 시금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분쟁시 행정지도권을 행사할 법적책임이 있는 서울시는 손을 놓고 있고 노동부도 매수사건은 형사사건이기 때문에 개입할 성질의 것이 못된다고 방관만 하고 있다.
관련된 행정당국이 서로 발뺌만 하고 있으니 차량시위와 같은 극단적 방법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지난 14일 노조측의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소에 따른 검찰의 조속하고도 정확한 수사를 기대하면서 그에 앞서 서울시와 노동부에 이 문제해결을 위한 보다 성실한 노력을 당부한다.
잘못된 협약이라면 양쪽의 조정을 통해 재협약의 기회를 갖든지,노사간의 검은 유착을 방지할 진상규명위원회를 관민 합작으로 구성하는 등의 적극적 모색을 시도할만하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민을 볼모로 잡는 차량시위같은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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