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핵 포기' 열매 맺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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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대 석유회사인 BP가 다시 리비아에 투자한다. 1974년 리비아의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로 철수한 지 33년 만이다. BP의 복귀는 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벌어진 팬암 여객기 폭파 테러에 리비아가 관여하면서 원수지간이 된 리비아와 영국 간의 관계가 완전 정상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2003년 8월 팬암기 테러의 책임을 인정, 배상을 약속하고 그해 12월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개방노선이 열매를 맺으면서 이 나라에 해외 투자가 몰리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 행정부가 기회만 되면 "이란.시리아.북한 등이 리비아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P의 리비아 재진출은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나라를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발표했다. 블레어 총리는 29일 카다피와 만난 뒤 "BP가 리비아 내륙과 연안 유전.가스전을 개발토록 하는 9억 달러 규모의 사업 협정을 리비아 국영석유회사(LNOC)와 체결했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이 유전.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는 향후 40년간 이어질 예정이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그 규모가 26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BP가 진출하는 곳은 리비아 최대 석유.가스전이 있는 시르트 지역이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다. 하루 약 170만 배럴의 원유와 매년 120억㎥의 가스를 생산한다. 이 중 70% 정도는 이탈리아로 수출한다.

리비아산 원유는 품질이 좋아 이 지역 유전에 대한 서방의 진출 경쟁이 뜨겁다. 2005년 제1차 석유 및 가스전 국제입찰에서는 대부분의 세계적 석유 메이저들이 리비아에 복귀했다. 미국.유럽.러시아는 물론 중국.대만.일본.캐나다.인도 등도 세 차례 입찰에서 개발권을 따냈다.

리비아 정부도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매년 40억 달러를 투입해 2015년까지 하루 원유 생산량을 300만 배럴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미 세 차례 입찰에서 100개에 이르는 채굴권을 외국 업체에 배당했다. 앞으로 3년간 국제입찰을 다섯 차례 더 해 220여 개의 개발권을 배분할 계획이다.

리비아는 현재 국영기업의 민영화, 외국인 투자유치, 자유경쟁체제 도입 등 혁신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 고립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의지다. 오일 머니로 전력과 국방 인프라 재정비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리비아는 서방에 에너지와 무기 시장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달 초부터 22억 달러의 무기 수출을 논의하고 있다. 블레어는 이번 방문기간 중 "몇 달 안에 상당 규모의 방산 계약도 체결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과 더불어 무기수출을 늘려갈 것임을 시사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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