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채인택 런던취재기 #6] 문화와역사와 더불어 걷기 5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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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의 수리 거쳐 여왕 즉위 50주년에 새롭게 문 열어

2002년 즉위 50년을 맞은 여왕은 그해 10월24일 골든 주빌리를 기념해 만든 금색 안내판 가운데 6개를 제막했습니다. 제막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아들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모든 왕족, 그리고 당시 영국을 공식 방문 중이던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영국에선 이날을 주빌리 워크웨이의 최종 완공일로 칩니다. 25주년에 맞춰 실버 주빌리 워크웨이로 이름 붙여졌던 것이 50주년을 맞아 재단장되면서 주빌리 워크웨이로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이름을 골든 주빌리로 바꾸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여왕이 즉위 60주년을 맞아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를 열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냥 주빌리 워크웨이로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96년 9월22일 영국 국왕으로선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았지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2년이면 이를 맞게 됩니다. 그의 모후가 100세가 넘도록 장수했으니, 유전적으로 보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참고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라는 말은 영국에선 60주년을 뜻하지만 미국에선 75주년을 말한답니다.

▶1번 노선: 웨스턴 루프 워크-현대 문화 중심지를 지나다

런던 웨스트 엔드는 공연을 비롯한 문화 중심지다. 특히, 세계 뮤지컬의 심장이다. 전세계 뮤지컬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상당수가 이곳에서 창작되거나 재창작돼 수출된 것이다. 사진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공연 중인 퀸스 시어터.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인 알랭 부를릴이 가사를 쓰고, 클로드-미셸 쇤베르가 작곡을 해서 1980년 파리에서 초연한 것을 85년 영어판으로 개작해 런던에서 무대에 올렸으며, 87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수출했다. 런던에선 지난해 10월 21주년을 맞았다. 극장은 중간에 옮겼지만 공연은 계속되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뮤지컬은 런던에서 해야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다. 레스터 스퀘어의 반액 할인 티켓 판매소에 가면 맨 뒤쪽 절벽 같은 좌석을 반액에 살 수 있다. [전체화보] 런던취재기 #6

오늘은 이 주빌리 워크웨이를 자세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이 걷기 길의 특징은 문화와 역사, 그리고 도시 건축에 흠뻑 젖으면서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경쟁력이 있는 것입니다.

주빌리 워크웨이는 모두 5개 노선으로 이뤄졌습니다. 현대 문화의 중심지를 걷는 길입니다. 이 가운데 런던 중심지의 서쪽에 있는 '웨스턴 루프 워크'는 9km 길이로 4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 엔드로 불리는 런던 한복판 문화 중심지를 지나는 보행로입니다. 뮤지컬.연극을 하는 극장과 영화관이 몰려있습니다. 넬슨 제독 동상이 우뚝 선 트라팔가 스퀘어와 템즈강 건너에 있는 사우스뱅크 센터를 지납니다.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새천년 기념으로 세운 밀레니엄 다리와 런던 아이, 그리고 과거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문화.쇼핑 중심지인 코벤트 가든을 지나는 신나고 멋진 노선입니다.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인 알랭 부를릴이 가사를 쓰고, 클로드-미셸 쇤베르가 작곡을 해서 1980년 파리에서 초연한 것을 85년 영어판으로 개작해 런던에서 무대에 올렸으며, 87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수출했다. 런던에선 지난해 10월 21주년을 맞았다. 극장은 중간에 옮겼지만 공연은 계속되고 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뮤지컬은 런던에서 해야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다. 레스터 스퀘어의 반액 할인 티켓 판매소에 가면 맨 뒤쪽 절벽 같은 좌석을 반액에 살 수 있다.

▶2번 노선: 이스턴 루프 워크-전통 문화의 현장을 걷다

'이스턴 루프 워크'는 8km 길입니다. 전체를 다 걸으려면 3시간 30분쯤 걸린답니다. 과거 문화를 상징한다고나 할까요. 과거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공연장을 그대로 재현해 같은 이름을 붙인 글로브 극장, 큰 배가 지나면 가운데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타워 브리지, 그리고 둥근 지붕의 성바오로 성당과 동북부 문화복합공간(연주홀.화랑.극장.영화관 등이 결합한 곳으로 런던 심포니의 상주 음악홀)인 바비칸 센터를 지납니다.

▶3번 노선: 시티 루프 워크-세계적인 금융가인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입니다!!!

런던 동부의 금융중심지인 시티 지역을 지나는 '시티 루프 워크'는 3km 길이로 비교적 짧습니다. 1시간이면 다 돌 수 있겠지요. 이곳은 세계적인 금융가입니다. 미국 뉴욕과 함께 국제 금융의 축인 시티 지역의 직장인들이 잠시 산보할 수 있는 길입니다. 뱅크 오브 잉글랜드 정도가 볼 거리입니다. 길을 가는 사람의 상당수가 연봉 수억, 수십억의 국제 금융인이랍니다.

▶4번 루트: 캄덴 루프 워크-런던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길

런던 시내 중북부를 지나는 '캄덴 루프 워크'는 길이가 5km로, 걷는 데 2시간 걸립니다. 런던의 일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길이지요. 런던대 본부가 있는 러셀 스퀘어와 인근 대영박물관과 대영 도서관이 있는 대학가를 지납니다. 대영 도서관은 원래 대영박물관 옆에 있었으나 90년대 후반 1km 남짓 떨어진 세인트 팬크라스 역 앞으로 옮겼습니다.

▶5번 루트: 주빌리 루프 워크-통치와 역사의 길

런던 시내 중서부에 있는 '주빌리 루프 워크'는 3km짜리로 1시간 거리입니다. 영국 통치의 중심지이지 역사의 길이지요. 관광 중심지이기도 하고요. 런던에 오면 반드시 봐야한다는 곳이 몰려 있지요. 그리고 게으른 관광객은 이곳만 보고 간다는 농담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버킹엄 궁전과 웨스터민스터 사원, 빅벤과 그 곁에 솟아있는 웨스터민스터궁(국회의사당)을 지납니다. 바로 곁에 관청가인 화이트홀과 2차대전 때 윈스턴 처칠 총리가 비상각료회의를 열던 전쟁청사 박물관(War Office Museum)이 있습니다. 사실 국외자의 눈에 잘 안 보여서 그렇지, 이 복잡한 수도의 중심지에도 웨스터민스터 스쿨 등 학교에 기숙사, 주택까지 사람 사는 흔적은 고루 있습니다. 그게 런던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자, 이 정도는 돼야 도시를 걷는 재미가 있겠죠. 정말 얄미울 정도로, 도시건묵과 문화, 예술, 역사와 함께 하며 걸을 수 있는 매력적인 걷기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대선 예비후보들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을 꿈꾸는 분들, 이런 걷기 길을 우리 도시에 만들어볼 생각을 해볼 수는 없나요?

하긴, 웨스터민스터궁 안의 하원 의사당도 들어가 봤더니 아주 작았다. 의자는 벤치였고, 초선 의원은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였다. 앞자리는 여당 총리와 각료, 야당 당수와 셰도우 캐비넷 각료가 앉아 서로 설전을 편다. 지역구 의원의 초청만 받아야만 구경할 수 있는데, 요행히 아는 선생님의 배려로 단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참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가 하원은 초록색, 상원은 빨간색으로 달랐다. 의자 위에 마이크가 촘촘히 달려 있었다. 국회 방송이 종일 중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왕은 매년 개회식 때만 하원의장의 허락을 얻어 하원에 들어올 수 있다. 그 외에는 출입금지라고 한다. 군주가 출입하면 자유로운 토론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채인택 기자(중앙일보 국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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