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까지 망치려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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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찍이 우리가 예상한대로 국회정치특위는 소득없이 1차협상 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대통령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에 있어선 부분적인 합의가 있었지만 여야대립의 핵이라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문제에 관해선 협상다운 협상도 못해본채 시간만 까먹고 만 것이다.
특위의 이런 결과는 정국을 다시 난기류에 몰아넣고 9월 정기국회의 정상화마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우리는 3당 대표회담이 정치휴전에 합의한 직후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휴전기간에 정치력을 모아 돌파구를 열도록 촉구했지만 정치권은 태평스레 문제를 방치해왔다. 특위차원에서 협상이 안될 경우 9월초에 3당대표회담을 다시 열기로 돼있지만 외유,또는 외유 계획과 추석연휴 등으로 인해 대표회담 역시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또 대표회담이 열려봐야 단체장 선거문제에 관한 양쪽 입장이 그대로인 한 타협이 이뤄질 전망도 없다.
이런 정국상황은 결국 여야가 타협할 의사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겉으론 타협과 대화를 외치면서도 속으론 이미 타협을 포기하고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정기국회 역시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우리가 보기에 특위에서 협상이 잘됐다 하더라도 대선을 코앞에 둔 정기국회가 잘 되기는 힘들다. 하물며 대립의 「호재」를 그냥 안고가면서 정기국회가 잘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야는 정기국회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아마 민자당으로선 단체장선거문제로 야당이 정기국회까지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란 배짱인 것 같고 야당은 정부의 위법상태를 대선전까지 끌고 가는게 유리하다는 계산인 듯하다.
이런 대선정략으로 녹아나는 건 국민일 수 밖에 없다. 38조원의 예산안,한중수교와 새로운 고비에 이른 듯한 남북관계,임기말의 대형사업 등 절박하고 긴급한 중대사안들을 다시 여야대립의 와중에서 제대로 짚지도 못한채 떠내려 보내게 될 공산이 다분하다.
뻔히 보면서도 이런 사태를 방치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선거는 선거고 국정은 국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야에 대해 다시 한번 촉구하고자 한다.
먼저 여야는 다시 3당 대표회담을 여는 것이 좋겠다. 외유일정은 조금 조정하면 되고 추석연휴를 너무 개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모적 정쟁에 대한 국민불신이 양김을 포함한 정치권을 다시 위기로 몰아넣는 일이 없도록 정기국회전에 협상을 시도하는게 옳다.
그리고,여야는 제발 국사와 정기국회를 소홀히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대선경쟁을 벌이더라도 국사와 민생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고 그런 자세라야 높아진 국민수준에서 표도 더 나올 것이다.
지금이 대선까지 가는 가을정국의 중대한 분기점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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