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통하고 체온이 느껴지는 울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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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31면

음악을 좋아하시는지? 음악을 듣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제일 좋은 하나는 공연장을 찾는 일이다. 실연의 일체감에서 오는 도취의 감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시간과 여력이 없어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 하나는 오디오 기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오디오 프리앰프 ‘마란츠 7’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음악을 듣는 방법은 분명히 차선책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운 탓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오디오라도 집으로 끌어들여 즐겨야 한다.

오디오의 궁극적 지향은 무엇일까. 난 음악적 울림의 성취라 생각한다. 좋은 오디오가 들려주는 음악은 피가 통하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악기의 선율은 자연스럽고 섬세하며 소리의 이면에 담긴 여운의 울림마저 풍부하게 재현한다.

음악의 이상적 재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오디오 기기는 진보해 왔다. 오디오사(史)를 통해 음악적 울림에 가장 근접했던 앰프로 ‘마란츠 7’을 꼽는다. ‘마란츠 7’은 오디오 기기의 두뇌에 해당하는 프리앰프다. 여기서 음색과 여운의 울림 같은 음악적 분위기가 좌우된다. 1960년 초 미국의 솔 B 마란츠가 만든 이 프리앰프는 2만 대가량 생산되었다.

과거의 유물이라 생각하는 진공관식 앰프의 매력은 하나 둘이 아니다.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낡은 고물에서 흘러나오는 훌륭한 음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본질의 충실함만으론 그 이유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마란츠 7’에는 이상을 향한 인간의 집념과 실현의 흔적이 담겨 있다. 기술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던 엔지니어는 결벽의 만듦새를 통해 자신을 투영시켜 놓았다.

이는 일렉트로닉스란 회로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최고의 부품과 정성으로 완결시켜 놓은 솜씨이기도 하다. 연주자는 미세한 떨림과 강약의 조절마저 흘려버리지 않는다. 섬세함이야말로 음악의 바탕이다. 마란츠는 그 섬세함을 내는 악기를 만들려 했다. 연주의 감흥이란 기계가 아니라 악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마란츠의 생각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명기(名器)에 걸맞은 그릇의 품격 또한 만만치 않다. 샴페인 골드 색상의 금속 광채가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전면 패널 디자인은 현재의 관점에서도 신선하다. 악기의 아름다움은 공업디자인의 백미쯤으로 칭송되어도 모자람이 없다. ‘마란츠 7’의 외관은 본질을 담보하는 상징이 되었다.

‘마란츠 7’으로 듣는 LP 음악은 마약의 중독성만큼 대치의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후의 앰프가 마란츠를 극복하기 위한 온갖 시도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오늘도 이 늙은 앰프를 복각하고 새로운 변종들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마란츠 7’의 생명력은 이어진다. 전 세계 오디오 파일 일부만이 ‘마란츠 7’이란 악기 소유의 행운을 누린다. 이들은 완성을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첨단 기기를 섭렵했던 오디오 파일들이 다시 이 낡은 앰프로 회귀한다. 진정 좋은 것은 비교의 관점에서 그 가치가 분명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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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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