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열 중 둘은 20년 넘게 살다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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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5월은 가정의 달, 21일은 올해부터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부부의 날이다. 함께 쇼핑 나온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한 백화점이 조사해보니 남편은 “합리적 쇼핑을 위해 내가 필요해”라고 내세우는 반면, 아내는 “든든한 짐꾼, 운전기사가 있어 좋아”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님’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래도 있지만 오늘도 하루평균 343쌍이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제 갈 길을 간다. 그 아픔이 어디 당사자뿐인가. 매일 341명의 어린 자녀 가슴에 멍이 든다(지난해 이혼건수 12만5000건으로 환산). 지난해 이혼 부부의 60.7%가 20세 미만 미성년 자녀를 둬 이를 합치니 12만4300명이나 됐다.

사회 변화와 함께 이혼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1970년만 해도 한 해에 1만 건을 약간 웃돌 정도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0만 건을 훌쩍 넘더니만 2003년 16만7100건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환란 이후 대량 실업과 카드 대란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 등 악화된 경제 상황이 가정 해체로 이어진 것이다.

이혼 증가 추세는 일단 2004년부터 꺾였다. 3년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이다. 그래도 지난해 부부 100쌍당 1.06쌍이 이혼한 셈으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달갑지 않은 최상위권이다.

특히 황혼이혼이 급증하면서 고령화 사회의 문제로 등장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남성의 이혼은 3087건으로 95년(589건)의 5배를 넘었다. 65∼69세가 1904건으로 가장 많고, 70∼74세가 746건, 75세 이상도 437건이나 됐다.

지난해 전체 이혼건수는 2005년보다 2.7% 줄었는데 65세 이상은 되레 18.2%나 불었다. 더구나 그 대부분은 할머니가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형태다. 20년 이상 함께 살다 갈라서는 경우가 90년에는 스물 중 하나(5.3%)였는데 지금은 다섯 중 하나(19.2%)꼴로 많아졌다.

어렵게 총각 신세를 면한 농촌 남성이 얼마 못 가 파경을 맞는 경우도 2004년부터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처의 이혼은 4010건으로 2005년(2444건)보다 64.1% 급증했다. 결혼한 지 4년도 안 돼 남이 되는 경우가 90%를 넘는다.

또 전남·충북·전북·경북의 순서로 많아 이미 농촌의 또 다른 속알이병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통계로 딱 잡히진 않지만 최근 기러기 가족의 이혼도 늘고 있다. 이 모두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과 관련이 깊다.

사실 이혼의 사회적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가정문화운동단체 하이패밀리가 2004년 고려대에 의뢰해 전국 100여 이혼가구가 치른 사회·경제적 비용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치른 연간 평균비용은 3171만4000원이었다.

이혼으로 발생한 직접비용인 위자료가 연간 171만4000원, 이혼 후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 1500만원, 매달 한두 차례 자녀와 만나는 데 들어가는 돈 240만원, 이혼에 따른 사회적 체면 및 품위손상 비용 60만원, 정신적 고통 600만원 등이다. 이를 지난해 이혼 가구로 곱하면 한 해에 약 4000억원이다.

급기야 협의이혼 신청이 들어오면 법원이 이를 바로 들어주던 것과 달리 1주일 또는 3주 동안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는 이혼숙려제도가 2005년 3월 도입됐다. 이게 효과를 보았는지 이혼건수는 줄고 있다. 이에 고무된 법무부는 지난해 숙려기간을 한 달 내지 석 달로 늘리자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판이 아닌 당사자 협의에 의한 이혼 비중은 지난해 86.7%였다.

무책임한 이혼을 막기 위해 자녀 양육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으면 협의이혼을 불가능하게 하는 가사소송법 개정안도 국회에 올라가 있다. 양육비를 댈 사람의 월급에서 일정액이 매달 빠져나가도록 하는 규정도 들어 있다. 월급을 받지 않는 사람에 대해선 양육비 지급용 담보를 내놓도록 하고….

이혼은 사회와 경제활동의 기초인 가정을 해체한다. 개인적 고통일 뿐 아니라 사회의 손실이다. 따라서 국가와 지역사회는 이혼의 사전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결혼 전 이혼예방 교육도 필요하다. 부부들이여, 5월이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서로 상대 입장에서 바라보자.

양재찬_편집위원 (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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