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서 캠코더 촬영 시도만 해도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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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금정책이 한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할 경우 미국 기업이 국제소송을 걸 수 있다. 예를 들어 종합부동산세.양도세 중과 등으로 인해 한국에 진출한 미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등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조세정책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대상에서 빠진다는 정부의 당초 설명과 다른 점이다. 앞으로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자동차 세제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조세 주권과 국회 입법권을 침범했다는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또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영화관에서 비디오카메라로 영화 촬영을 시도만 해도 지적재산권 침해 미수범으로 처벌된다.

정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의 한.미 FTA 협정문과 각종 부속 서류를 미국과 동시에 공개했다. 공개된 협정문에는 정부 설명과 다른 일부 문제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FTA 반대진영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국회 비준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협정문에 따르면 양국 간 긴급수입제한제도(세이프가드)는 품목별로 단 1회만 발동할 수 있다. 감귤.닭고기 등에 대해 한 번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더 이상 수입을 제한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은 또 미국이 요구한 ▶투자자 및 지적재산권 보호 ▶섬유 우회수출 방지 등을 위해 처벌 규정과 정보 제공 의무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는 국제서류 특송시장을 개방했고, 우체국이 독점한 우편분야도 무게.가격에 따라 민간기업 참여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은 당초 예상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한반도 역외가공지역(OPZ)의 지정 조건에 OPZ 내의 환경기준 및 근로기준과 관행.임금.경영.관리관행 등을 포함시켰다. 북한의 근로기준이나 임금.경영 관행이 국제규범에서 동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29일~6월 6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다. 김 대표는 현지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와 만나 협정 문안 최종 수정작업을 할 예정이다. 최근 미국이 새로운 노동.환경 기준을 적용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이번 방문이 사실상 재협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최종 문안 확정을 위한 것일 뿐 재협상과 무관하다"며 "미국은 현재까지 재협상 요구를 공식적으로 해 온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김 대표가 워싱턴 협상을 통해 미국의 구체적인 제안 내용을 파악하고 일부 조항을 재검토할지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thepla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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