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거역하기 힘든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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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4강전>

○ . 한상훈 초단 ● . 박영훈 9단


숨긴 채 밭 전자의 가운데를 째달라고 유혹한다. 19로 뛰어나가고 20으로 붙였을 때 박영훈 9단은 턱을 고인 채 생각에 잠긴다. 동심마저 느껴지는 그의 얼굴에선 승부사 특유의 날카로움이나 살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순둥이'가 험악한 세계바둑의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는 게 때로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21은 정수. '참고도1' 흑1은 백A의 맥점을 남겨 공격의 재미를 맞볼 수 없게 된다. 또 21이 놓이면 실전의 25처럼 백의 가운데를 가르는 수가 발생한다.

한상훈 초단이 24로 B의 침입을 방비했을 때가 기로였다. 박영훈은 망설임 없이 25, 27로 가르고 나갔는데 이로 인해 바둑은 순식간에 급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사실 25는 거역하기 힘든 유혹이다. 흑▲들의 강력한 원군이 대기하고 있어 백돌을 끊기만 하면 단번에 끝장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하지만 훗날 백홍석 5단과 함께 이 판을 검토한 김지석 3단은 "그 수가 고전의 시작이었다"고 지목했다. 김지석은 배우 이준기 뺨칠 정도로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 강자인데 바둑판 위에선 못 말리는 싸움꾼이다. 그 유명한 싸움꾼인 김지석조차 '참고도2'의 흑1로 천천히 두는 쪽을 주장할 만큼 25는 위험한 수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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