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책에 허점 많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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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에너지의 합리적인 이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맹목적인 강조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70년대부터 기름을 절약하자,전기를 절약하자고 외쳐왔지만 실제로는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증가율을 나타내는 국가로 남아 있다. 아직은 우리의 산업체에서건,일상생활에서건 절약정신이 뿌리깊이 젖어들지 못한 것이다.
이제 정부가 에너지 절약의 시범을 보이면서 공급측면 보다는 수요측면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뒤늦긴 했지만 적절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그 목적이 훌륭하고 타당하더라도 실행방법이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획일적일 때는 일반의 지시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의 반발소비라는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7월 들어 기온이 급상승하고 있으나 정부청사를 포함한 공공건물은 요즘 에어컨 사용을 억제하고 있다. 솔선수범을 통한 에너지 절약 분위기를 민간부문에까지 확산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을 일단 평가하면서도 과연 이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하느냐에 우리는 강한 의문을 갖는다. 중앙집중 냉방체제를 전제로 설계된 밀폐된 건물안에서 냉방기 사용을 완전 중지하면 업무의 효율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공무원들도 신체적으로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부채를 부치며 볼 수 있는 사무에도 한계가 있다. 모든 공무원들이 온종일 부채를 부쳐대며 민원인의 출입에까지 짜증을 내도록 놔둘 것인가.
밀폐된 정부 청사에서는 오후 무더위가 심할 때만이라도 제한적으로 에어컨을 가동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당장의 비용만을 따져봐도 역풍창구를 새로 만들고 선풍기를 사용하는 쪽이 오히려 에어컨 보다 더 많이 들 것이다. 모든 정책은 반드시 획일적으로 추진되어야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수요측면에서 정부가 시행을 검토하고 있는 에너지효율등급표시제 방안도 좀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효율이 높은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냉장고나 자동차 등을 1∼5등급으로 표시한다는 생각이다.
공업표준화법에 따른 KS표시제가 있고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 의한 품질마크제도와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이 지정한 「열」자 표시제도 있다. 이에 더해 효율등급제를 도입한다면 생산업체들은 각종 규격이나 표시를 받기위해 이중삼중의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의 의도가 에너지절약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서 절차를 더욱 복잡하게 하면 기업의 경쟁력에는 마이너스요인이 된다. 각종 근거 법령을 한군데 모아서 특정 제품에 대한 검사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제도개선책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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