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사기” 결론은 성급/사실상 끝나가는 「땅 사기」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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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 사장­윤 상무 대질 왜 안하나/김·곽씨 미검거 등 의문점 여전
정보사부지매각 사기사건 검찰수사는 일단 단순사기쪽으로 방향이 기울고 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성무건설회장 정건중씨 일당이 빼돌린 자금의 사용처가 확인되는 금주중 수사를 종결할 움직임이지만 제일생명 윤성식상무의 비자금조성기도,성무건설의 정보사부지 사용계획수립 등 새로 드러난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기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난 곽수열·김인수·박삼화씨 등의 신병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사기극으로 잠정결론을 내린 자체가 성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우선 제일생명측의 비자금조성기도라는 돌연한 변수를 명확하게 해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윤 상무는 조사과정에서 정씨 일당과 매매약정을 체결하면서 별도의 비밀약정을 통해 60억원을 마련,30억원은 자신의 몫으로 하고 30억원은 회사비자금으로 사용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조양상선 박남규회장과 제일생명 하영기사장 등 회사수뇌부가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윤 상무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판단」하고는 있으나 지시·승인여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검찰은 하 사장·윤 상무의 대질신문을 통해 이 부분의 진상을 당연히 밝혀야겠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이유없이 이를 미루고 있다.
만일 대질신문에서 윤 상무 개인이 아닌 회사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이 일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제일생명이 6백60억원을 투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배후세력의 존재가능성은 한결 커지게 된다.
이와 함께 제일생명이 정씨일당에 의해 예치금 2백30억원과 어음 4백30억원이 빼돌려진 것을 알게된 시기가 전 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의 홍콩도피사실을 확인한 6월25일이라는 검찰의 판단도 허술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 상무는 이미 4월에 정씨 일당과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계약·중도금 및 잔금은 매매계약때 지급한 2백30억원과 발행어음 4백30억원으로 대치한다」고 명기해 6백60억원이 「지급」된 것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일생명이 사기를 당했다는 검찰의 결론과는 달리 제일생명이 배후세력과 모종의 묵계가 이뤄져 정씨일당의 자금유출을 묵인했다는 추리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정씨일당에게 국방부장관의 무인이 찍힌 가짜 매매계약서를 만들어주고 윤 상무를 만나 정보사부지 불하사실을 확신시킨 김영호씨가 자신의 배후를 공공연히 과시했음에도 이와 관련한 참고인 조사 등을 외면한 것도 수사관행상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김씨가 「돈이 탐나서」 정씨 등의 사기행각에 가담했을 뿐 군내부에 다른 배후세력이 없는 단독범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91년 8월까지 합참군사시설 정책실장으로 토지관련업무를 담당했고 현역시절 대령진급때까지 육사18기의 선두그룹이었다는 경력과 막강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 친분과 금품을 미끼로 다른 「윗선」을 비호세력으로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씨가 1월21일 정씨일당을 만나 가짜계약서를 넘겨준 곳이 국방부내 자신의 사무실이었고 ▲이들로부터 받은 81억5천만원중 76억5천만원은 계약금이었으며 ▲이 돈을 은닉시키지 않고 있다가 6월11일 홍콩도피직전에 되돌려준 사실도 분명히 되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성무건설과 조합아파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정씨일당을 구속시킨 뒤에도 미루고 있다가 11일에야 실시한 것도 수사관행상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정씨일당이 사기극을 벌이기 위해 위세과시용 유령회사인 성무건설을 4월에 급조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이 회사는 정보사부지에 1천2백가구 규모의 대규모 조합아파트건립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등 의욕적인 사업추진을 해왔고 이는 정보사부지 불하계획이 성사될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근거가 있기전에는 어려운 일들이다.
검찰이 성무건설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은 것은 단순사기극이라는 일정한 틀속에 이번 사건을 가둬두려는 의도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인수·곽수열·박삼화씨 등 제일생명­정씨일당­김영호씨를 연결시켜준 브로커들이 검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가 사실상 종결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검찰은 당초 조역에 불과하던 이들이 국방부를 자주 드나들었고 정치인들과의 빈번한 접촉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점차 핵심인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들의 검경의 검거망을 하루 차이로 계속 따돌리고 있다고 공개하고 있다.
이미 조사를 받은 관련인물들의 「떠넘기기식」진술에 의해 마치 배후관계 규명의 열쇠를 쥔 것처럼 돼버린 이들이 입을 열기전에는 이 사건의 전체적인 구도는 정확하게 그려지기 어려울 것 같다.
이밖에도 검찰이 정씨일당 등 7명에 대한 제일생명측의 고소장을 2일 접수하고도 정덕현대리가 4일 구속될 때까지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도 수사상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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