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장씨부인 실제는 聖人 꿈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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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7면

10년 전 우리 사회에 큰 논쟁이 있었다. 장편소설 『선택』을 쓴 작가 이문열씨와 페미니즘 쪽 사람들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선택』은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1598~1680, 이하 장씨부인)를 다룬 소설.

장씨부인은 재령 이씨 집안에 후처(계모)로 들어가 10명 자녀를 훌륭히 키웠으며, 손자 대(代)에 이르기까지 정통 퇴계 학맥을 잇게 한 조선시대의 대표적 ‘현모양처’. 대학자 이현일의 어머니로서, 재령 이씨 집안에서 세세(世世)토록 제사 지내는 인물이다.

당시 이문열씨는 오늘날 여성들이 ‘자기성취’에 연연하느라 ‘내조와 양육’을 경시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세상이란 어차피 고통의 도가니’라 했다. 여성들이 묵묵히 세상을 견디며 내조와 양육에 헌신하는 것도 훌륭한 사회적 기여라고 강조했다. 여성들 쪽에서는 그게 시대착오적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때 장씨부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논쟁이 본질에 이르지는 못했다. 장씨부인은 ‘자기성취’를 버리고 ‘여자 일’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장씨부인은 “시 짓고 글씨 쓰는 것은 모두가 여자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실로 장씨부인은 여자의 일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깊은 의미를 지녔다.

장씨부인은 성인(聖人)이 되고 싶어 했다. 여자 일을 열심히 한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성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성인의 행동도 모두가 인륜(人倫)의 날마다 늘 하는 일이라면, 사람들이 성인을 배우지 않는 것을 근심할 뿐이지, 진실로 성인을 배우게 된다면 또한 무엇이 어려운 일이 있겠는가?”

장씨부인의 이 말은 여자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다만 여자는 여자로서의 소임을 다할 때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결론적으로 장씨부인은 성인이 되기 위해 여자의 일을 선택했던 것이다.

실제 장씨부인의 삶은 도학자다웠다. 병자호란 후 은둔생활에 들어간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자식들을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남 보란 듯이 키워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여중군자(女中君子)’ 소리를 듣는 유일무이한 여성으로 추앙받게 됐다. 장씨부인은 온몸으로 성리학을 구현한 것이었다.

성리학은 조선시대 모든 남성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가치였다. 그것을 통해 남성들은 권력을 얻고, 민을 지배했으며, 또한 학문을 연구하고 인격을 수양했다. 그런 성리학에서 최고의 가치는 도덕 수양을 통해 완성된 인격체, 즉 성인이 되는 일이었다.

장씨부인은 이런 분위기를 잘 파악한 사람이었다. ‘인륜의 날마다 늘 하는 일’을 잘 수행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성리학의 주체자가 되고자 했다. 성리학적으로 사는 것이 현실에서 주류로 사는 것이며,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던 것이다.

장씨부인의 이러한 삶의 태도는 오늘날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남자들에게 최고의 가치이자 자아실현의 목표였던 ‘성인 되기’를 동일한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장씨부인은 임윤지당(1721~93)이나 강정일당(1772~1832) 같은 여성 성리학자들이 나올 수 있는 기초를 닦은 사람이기도 하다.

장씨부인을 여자 일 자체에 의미를 둔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의 위치를 지나치게 한정한다. 그녀는 성리학이라는 남성 영역에 도전해 그것을 여성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장씨부인은 ‘현모양처’보다는 ‘자기성취’에 성공한 여성이다. 현실에 닻을 내리면서도 한 시대의 새로운 돛을 올렸으니, 장씨부인은 이 시대 여성의 삶에도 의미가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