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진경산수화의 시작과 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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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1면

겸재 정선의 ‘어초문답’

고미술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봄 정기전이 오늘부터 막을 올린다. 봄ㆍ가을로 국보급 소장품을 내보이는 간송은 2007년 상반기 주제를 ‘우암 송시열 탄신400주년’으로 잡았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ㆍ1607~89)을 조선 진경산수화의 정신적인 원조로 봐 꾸린 기획전이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우암은 중국의 성리학을 독창적인 조선의 성리학으로 소화해낸 율곡학파의 3대 수장으로, 그의 사상은 중국 화본을 베끼지 않고 조선 산수를 우리 눈으로 사생해 독자적으로 그린 진경산수화의 뿌리를 이뤘다”고 해석했다.

간송미술관이 수장고에서 고른 100 여 점 글씨와 그림은 조선 진경(眞景)의 시작과 완성을 아우른다. 진경산수화를 싹 틔운 창강(滄江) 조속(趙涑ㆍ1595~1668)부터 장대한 열매를 거둬들인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작품까지 17ㆍ18세기 그림과 글씨가 시대순으로 나왔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작품은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며 천지사물의 이치를 논한다는 북송시대 유학자 소옹의 글을 그림으로 그린 ‘어초문답(漁樵問答)’. 왜 우리 그림 진경산수화가 중국 그림과 다른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중국 화본을 그대로 베낀 이명욱의 ‘어초문답’에는 중국식 옷을 입고 중국식 들것을 든 어부와 나무꾼이 등장한다. 겸재의 그림에는 우리 선조가 쓰던 지게가 나오고 우암의 영향으로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행했던 선비의 옷인 학창의를 입은 인물이 등장한다. 확연히 다른 그림 속 소재와 화풍을 보면 진경산수화가 품은 조선 정신의 크기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옛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역시 간송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인 겸재 정선의 그림 31점이 한꺼번에 출품된다는 것이 가장 푸진 소식이다. 우암이 돌아갈 때 열네 살 소년이었던 겸재는 그 혼을 이어 70여 년 진경산수화를 닦음질해 우뚝한 경지를 세웠다. 겸재 절정기의 득의작 중 하나인 ‘풍악내산총람’ ‘단발령망금강’ ‘금강내산’ ‘장안사’ ‘총석정’ 등이 안복(眼福)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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