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3)제88화 형장의 빛(8)|사형수 최재만|박삼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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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형집행을 7년간 기다린 한 사형수가 있었다. 1982년 4월13일 대법원에서「청계 농협분소 살인사건」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어 형 집행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던 최재만씨(현재 40세·대전교도소 무기수로 복역중).
최씨가 지난 88년 2월26일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단행된 대사면 때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되어 소생되기까지에는 감동적인 인간애가 있었으며 그것은 이 시대의 지순한 사랑과 용서를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최씨가 무기로 감형된 순간 서울구치소 담 밖에서는 두 여인이 통한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결혼한지 3년만에 남편을 사형수로 떠나보낸 최씨의 아내 김경심씨(41)와 최씨의 노모 정계순씨(80)가 그들이다.
죽음의 공포, 지척의 사형대를 초월하기 위해 최씨는 하루에「지장보살」을 5만번씩 부르면서 7년 세월을 보냈다. 보통 길어야 2년 정도면 사형이 집행되는 관례에 비하면 그는 참으로 긴 세월을 보낸 셈이다.
꽤 무더웠던 83년 7월 중순, 서울구치소에 교화차 들렀던 나는 그와 처음 만났다. 그는 손에 염주를 들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지니고있던 염주와 그의 박달나무염주를 바꿔 그에게 불심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에서『염주를 바꿉시다』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그 제의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다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구경이나 하자고 간청, 염주알마다 깨알같은 글씨로 금강경을 새긴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특히 한 염주알에는「나는 억울하다」고 새겨져있었고 그 옆에는「필귀가(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라는 글씨가 새겨져있었다.
사형수가 어떻게 집에 돌아가느냐면서『정말 죄가 없느냐』고 내가 물었다. 처음에 머뭇거리던 최씨는『죄를 짓지 않았으니 반드시 돌아갑니다.
나 자신의 세속적 한을 새긴「필귀가」란 세 글자가 스님에게는 속된 소원일 뿐이니 스님께 염주를 드릴 수 없습니다』면서 지나간 사연을 털어놓았다.
자신과 무관한 엄청난 사건에 연루되어 이렇게 생활하고 있지만 타인을 원망하지는 않는다면서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얘기하는 최씨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나는 그의 억울함이 사실인지 사건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그와 함께 공범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복역중인 김태성(당시 36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는 복역 중 병세가 악화되어 형 집행정지로 잠시 바깥에서 치료받다가 83년5월 사망했음을 알아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태성은 심문도중 고문으로 허리·척추·가슴을 다쳐 치료를 받고있다고 항소·상고이유서나 탄원서 등을 통해 호소했으며「포한종천할 것 같다」는 얘기를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또 다른 공범 권혁구(당시 19세)는 소년수로 대전교도소에 이감되어 있었는데 배가 고파 절도한 죄는 있으나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천주교를 신봉하면서 빵을 훔친 사실도 큰 죄임을 알게 되었다면서 울먹였다.
최재만씨가 이 사건과 무관함을 확신한 나는 83년10월, 최씨의 구명운동을 벌이기로 작정하고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병호)를 찾아갔다. 나의 간절한 호소를 들은 변호사는 인권위원회를 열어 재판기록을 조사한 결과 의문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김태형 변호사를 담당변호사로 지명해 재심청구를 맡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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