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지은희 '이제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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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지은희가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KLPGA 제공]

수상스키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아버지(지영기.52)는 남이섬 옆 북한강에서 중학생 딸에게 쇼트게임을 가르쳤다. 딸은 아버지가 타고 있는 보트를 향해 샷을 했다. 정교한 샷이 아니면 공은 물에 빠졌다. 그러면 아버지는 물속에 들어가 공을 찾아와야 했다. 부담은 북한강 물보다 컸다.

어린 소녀 지은희에게는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무시무시한 훈련이었다. 한밤중 산속의 무덤에서 샷 연습을 한 박세리(CJ) 못지않은 강심장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은희(21)가 4일 강원도 평창의 휘닉스파크 골프장에서 끝난 휘닉스파크 클래식에서 우승했다. 항상 상위권에 있었지만 프로 3년 동안 우승컵을 들어보지 못한 지은희의 첫 감격이었다.

2위에 7타 앞선 선두로 최종 3라운드를 시작했으나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진땀승이었다. 지난해 우승자 박희영(이수건설)이 17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1타 차까지 쫓아왔다. 박희영은 지난해 7타 차 역전 우승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흐름으로 봐서는 역전 상황이었다. 지은희는 그러나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를 성공, 3라운드 이븐파를 치며 합계 12언더파로 1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아버지가 캐디백을 메지 않은 첫 경기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이러니했다.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도 우승하지 못하자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버지가 "이제 한번 혼자 해봐라"고 했다고 한다. 지씨는 "내가 없으니 우승한 것 같아 솔직히 서운하다. 그러나 이게 다 커가는 과정이며 딸과 떨어질 때를 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딸을 가장 잘 아는 내가 함께 있을 때 장점도 있겠지만 다른 캐디가 백을 메면 내가 옆에 있을 때처럼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은희는 "나를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가 옆에 없을 때 우승하니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스샷을 했을 때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으면 기가 죽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좋은 캐디를 구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제 딸의 캐디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신지애(하이마트)는 최종일 5언더파를 몰아쳐 합계 9언더파 3위로 경기를 마쳤다.

평창=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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