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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는 사람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호 13면

영화감독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들은 주로 카메라 뒤에 숨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론에 나오는 인터뷰나 영화제 시상식을 통해서나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유롭고 세련된 옷차림에 자신감 있는 미소, 그리고 언제나 스태프와 배우에게 공을 돌리는 겸손함….

소설가 천명관의 ‘시네마 노트’

과연 그게 다일까? 미안하지만 그것은 의례적인 포즈일 뿐 진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카메라 뒤에 감추어진 그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여기에 감독의 훌륭한 전형을 제시하는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감독 칼 던햄이 등장하는 ‘킹콩’이란 영화다.

칼 던햄은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필름과 장비를 훔치고, 가난한 여배우를 꼬드기고, 친구인 시나리오 작가를 속이고 선장을 설득해 마침내 그 모두를 이끌고 수마트라의 해골 섬으로 배를 향하게 하는 열정적인 야심가이다. 또한 목표를 위해 조수의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냉혈한이며, 거대한 브론토사우루스 앞에서도 카메라를 돌릴 수 있는 배짱의 소유자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킹콩에게 클로로포름을 던지는 투사이자, 마침내 킹콩을 생포해와 뉴욕 시내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무뢰한이기도 하다.

사실 그들에게 특별한 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대개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도 없고 연기도 할 줄 모르며 촬영기술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많은 것을 순식간에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촬영현장에서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면 모든 스태프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는 단숨에 그 커트가 오케이 커트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얼마나 진땀 나는 상황인가!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미합중국 대통령이며 그 다음이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이란 얘기가 있다. 아마도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포즈를 가진 팔색조이자 뛰어난 연기술을 가진 배우이다. 속사포 같은 말솜씨로 제작자의 혼을 쏙 빼놓는 수다쟁이이며, 자아도취에 빠진 배우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 벌레가 득실거리는 밀림 속으로 밀어넣는 깡패이자, 인상을 한 번 쓰는 것만으로도 스태프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폭군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동력을 이용하는 착취자이자, 쇼맨십에 뛰어난 정치가이며 노회한 거간꾼인 동시에, 수십억원의 제작비를 말아먹고도 제작자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 영화에 대한 계획을 줄줄이 늘어놓는 뻔뻔스러운 장사꾼이기도 하다.

모든 감독이 다 그러냐고? 물론,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훌륭한 감독들은 대개 그렇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덧없는 영감을 붙잡으려 애쓰는 철학자이자,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폭음을 일삼는 알코올중독자인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영화 속에 자신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기 위해 제작자와 싸우는 치열한 예술가이며, 자신의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하기만 한 힘없는 가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에 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을 때 나비넥타이가 썩 잘 어울리는 그들, 그들을 우리는 영화감독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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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씨는 충무로에서 오랜 낭인생활 끝에 장편소설 ‘고래’로 등단한 뒤 소설과 연극, 영화와 드라마 등 온갖 이야기 예술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단 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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