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과 보석 그리고 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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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25면

영국 가수이자 작곡가 엘튼 존은 충분하다는 말의 의미를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더러 사치스럽다는 거겠죠.” 그는 평생 싸구려를 가진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엘튼 존처럼 돈이 그렇게 많다는 게 어떤 건지 통 알 수 없다. 그래도 누가 더 행복한지는 재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취향 가운데 닮고 싶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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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비 언어엔 경멸과 조롱이 깃들어 있다. 결혼식 마치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살구색 투피스의 여자들을 보면 저걸 평생 몇 번이나 입을까, 효용성을 걱정하는 혀가 저절로 차지고, 흰 테니스화에 검정 양말을 신은 남자를 보면 그 후진 감식안이 더불어 딱해지니까. 그런데 엘튼 존을 볼 때마다 그 증세가 제일 심각해진다.
엘튼 존보다 보석이 많은 사람은 영국 여왕밖에 없다. 소더비 경매장에 소장품 2000점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는 보석 박힌 십자가를 중세 그레고리 3세 교황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

그가 가진 보석을 다 담자면 보석함이 아니라 보석 드럼통이 필요하다. 그는 자기가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라고 정의했던 여배우 마릴린 먼로인 줄 안다. 그에겐 보석이 옷이라서 아예 휘감고 다닌다. 다이아몬드가 잔뜩 박힌 3000파운드짜리 안경, 1만1750파운드짜리 열쇠, 12만 파운드짜리 팔찌, 5만 파운드짜리 반지…. 그가 갖추지 못한 건 다이아몬드가 박힌 끈팬티밖에 없을 것이다(그는 단지 옷에 맞추기 위해 7만 파운드짜리 다이아몬드 팔찌와 3만 파운드짜리 반지와 2만 파운드짜리 귀걸이를 살 정도다).

그는 분유 광고 아기 모델 같은 두둑한 몸을 감싸기 위해 섀빌로 거리에서든, 강원도 평창의 작은 양복점에서든 결코 권하지 않을 옷감만 고른다. 어떤 땐 인도 식당 벽지를 그대로 몸에 걸친 것 같다. 2001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입었던, 분홍 물방울 무늬의 연두색 수트는 그처럼 옷 밖으로 배가 비어져 나와 이 닦을 때 치약이 그리로 떨어지는 사람은 결단코 피해야 할 옷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록의 전설이 아닌, 뚱뚱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옷이 너무 많아 여행 갈 땐 가방을 13개나 들고 다니고, 10년 전부턴 입지 않는 옷을 죄다 경매에 내놓기도 하지만(동시에 그는 더 많은 옷을 사들인다), 청록색, 동물 프린트, 보석으로 얼룩진 그의 옷장엔 한 가지 원칙만 있다.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좋다.

세계 도처의 그의 부동산 목록을 헤아리는 건 지치는 일이지만, 더 기절할 것 같은 건 살림살이이다. 수프 그릇 하나에 7000파운드면 말 다 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가 경매에 내놓기 전까진 그의 집에 뭐가 있는지 당최 모른다. 몇 해 전 가을, 그는 400점이 넘는 그릇이며 집기를 소더비 경매에 내놓았는데, 그때 가장 싼 거라고 해봤자 96파운드짜리 촛대였다.

지금 나는 엘튼 존의 감식력을 신나게 야유하는 중이지만, 끝까지 그럴 생각은 없다. 결손 가정을 위해 라면 한 박스 내놓지 못한 주제로는, 늘 그랬듯 그때도 경매 수익금을 에이즈 재단에 기부했던 그를 비난할 수 없다.

기껏 ‘몸뻬 바지’풍 운동복을 좋아하는 바람에 만날 후덕한 할머니로만 보이는 그보다야 내 ‘옷발’이 더 좋다고 스스로 잠시 치켜세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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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의 편집장 이충걸씨는 에세이집『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슬픔의 냄새』등을 펴내고 박정자의 모노 드라마 ‘11월의 왈츠’를 쓴 전방위 문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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