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예쁜 와인, 프랑스인의 자존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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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29면

샤토 마고 2000. 브라이트 딥 루비 컬러. 향기에 취해 있으면 와인을 테이스팅하기 힘들 정도다. 화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화려한 꽃향기가 먼저 올라오고 카시스 베리 플럼의 향들이 뒤를 따른다. 약하게 스파이시향이 피어오르고 오크 터치도 뒤를 잇는다. 타닌 풀, 피니시 롱, 밸런스 굿. 매우 섬세하면서도 복합적인 향기가 인상적이다. 동글동글한 타닌도 참 좋다.

와인 시음기-샤토 마고 2000, 샤토 무통 로실드 2000

4시간쯤 지나자 향기가 극에 이르러 폭발적인 강한 향으로 변한다. 팔레트도 제법 임팩트가 강하고. 1996년산보다는 파워 면에서 조금 떨어져 보이고 1990년산과 유사하다.

샤토 무통 로실드 2000. 무통 로실드는 뛰어난 빈티지에 정말 역대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내는데 1986년 이후에는 조금 처지는 느낌이다. 1996년, 2000년, 2003년 모두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나 마케팅에만 너무 신경 쓰다가 정작 와인은 망친 듯해 안타깝다.

물론 1996년, 2000년, 2003년산 모두 뛰어난 와인이었지만 1945년, 59년, 82년, 86년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크 루비 블루. 역시나 무통은 무통이다. 한마디로 과일 폭탄. 압도적인 블랙 프루트 캐릭터가 먼저 올라오고 뒤를 이어 오크 토스티함. 시간이 지날수록 향은 무게감을 더해가며 복합적인 섬세함의 극치를 달린다. 타닌 풀. 애시디티 미디엄. 피니시 롱. 밸런스 굿. 강한 타닌이지만 동글동글해서 참 좋다. 침샘을 자극하는 뛰어난 애시디티. 제법 무게감 있는 피니시. 참 잘 만든 와인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하다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마고가 지금 마시기엔 더욱 편안하지만 좋은 구조감을 갖추고 있어 오랜 시간 숙성도 가능할 듯. 무통 역시 뛰어난 과일 캐릭터와 구조감을 가져 오랜 숙성이 가능할 듯하다. 향적인 측면에서는 둘 다 뛰어나 판가름을 내기가 힘들지만, 더욱 매력적인 와인을 찾는다면 마고의 손을 들어주겠다. 마고는 처음에는 부드럽지만 브리딩을 할수록 동글동글한 타닌과 긴 피니시로 입 안을 자극한다면 무통은 처음부터 강하고 무거운 타닌이 일품이며 무게감 있는 마무리를 선사한다. 밸런스는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조화미가 좋다.

음식 궁합은 어떨까. 마고는 농어 요리나 가벼운 소고기 요리와 좋은 궁합을 이룰 듯하며, 무통은 양갈비나 스테이크가 생각난다.

모든 점수를 종합해 판단한다면 마고의 승이다. 왜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마고, 마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마고는 와인 이전에 프랑스인의 자존심이 아닐까. 이준혁(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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