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스모선수 승진 잡음/일본(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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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고자리 「요코즈나」자격시비/“2번우승… 왜 물먹이냐” 미/“성적보다 혼을 갖춰야” 일
미일 언론들이 하와이출신 스모선수 고니시키(소금·28)의 요코즈나(횡망) 승진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키 1m78㎝에 체중이 2백62㎏이나 되는 거한 고니시키는 지난해 11월이후 일본스모(씨름) 연속 세시합에서 두번우승,한번 준우승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통상적으로 보면 이같은 성적의 선수는 이른바 스모의 최고위직인 요코즈나에 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3월 소위 요코즈나심사위원회는 그의 요코즈나 승진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일본스모협회가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미국언론은 이들 『일본의 편협성 내지 인종차별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일본스모협회는 『일본문화를 모르는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스모는 1부리그에서만 최고위직 요코즈나를 비롯,오제키(대관) 등 20개순위가 있다. 요코즈나는 오제키 지위의 선수가 두 시합에서 연속우승하거나 그에 준하는 성적을 올렸을때 스모협회가 요코즈나심의회에 심의를 요청,심의회의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따라서 이 규정만을 놓고 본다면 고니시키는 요코즈나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고니시키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선수가 요코즈나가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스모협회는 『고니시키가 우승은 했지만 경기내용이 좋지 않았다』『요코즈나는 성적뿐만 아니라 품격을 갖춰야 한다』며 고니시키를 더 두고 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월급제인 스모선수의 경우 요코즈나가 디면 일본총리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다. 또 다른 직위의 경우 성적이 나쁘면 직위가 강등되는데 반해 요코즈나는 강등되지 않는다. 은퇴만 있을 뿐이다.
스모협회는 이같은 규정을 두고 『스모는 일반스포츠와 다르다. 일본의 혼이 배어있는 것으로 단순한 성적만으로 요코즈나라는 직위에 오를 수 없다』고 일본문화를 들먹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0일 고니시키가 뉴욕타임스에 『인종차별 때문에 요코즈나가 안됐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돼 일본스모계가 발칵 뒤집혔다. 일 언론들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양국 언론이 법석을 떨자 이번에는 고니시키가 당황,이를 부인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스모계를 건드렸다가는 결국 요코즈나가 되는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데와노우미 도모타카(출우해지경) 일본스모협회 이사장은 『고니시키는 어른이 되라. 너는 아직 오제키라는 지위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각이 없다. 후배가 인종차별발언을 했다는 것은 주위의 사람을 다스리는 지도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고니시키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이어 5월 시합에서 고니시키가 우승한다해도 꼭 요코즈나가 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 외국인이 세번 연속 우승하고도 요코즈나가 되지 못한 예도 있다는 것이다. 스모는 일본이 국기로 생각하는 전통 스포츠다. 단순히 몸집이 크다고 해서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70여가지나 되는 다양한 기술을 사용,달인이 돼야만 요코즈나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일본인들은 생각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일본인에게 고니시키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다. 그를 보러 많은 사람이 모이긴 하지만 엄청난 체구 때문에 일본선수들이 꼼짝 못하는 것을 보는 스모계의 심사가 착잡하다. 1m83㎝,1백25㎏의 작은 체구로 1천45승,3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지난해 은퇴한 지요노후지(천대□부사)와 같은 반열에 고니시키를 두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일본스모계의 속마음일지도 모른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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