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가시권」 진입/이 외무 방중성과 중간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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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호적 외무회담… 「필요성」엔 원칙 합의/다음 접촉일정까지 약속… 논의진전 기대
한국 외무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상옥 외무부 장관이 북경에서 받고 있는 예우와 활동범위는 앞으로 양국관계의 진전속도를 짐작케 해주고 있다.
중국은 이장관이 지난해 아태경제사회위원회(ESCAP) 총회 의장으로 14일 오후 개막식에서 첸치천(전기침) 외교부장에게 의장직을 넘겨주기까지는 계속 의장 자격을 갖고 회의를 주재하게 된다는 점을 이용,상당한 의전적인 배려를 했다. 중국 권력의 핵심부인 조어대와 중남해로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갖는 의미는 형식을 까다롭게 따지는 중국으로서는 대단한 배려라 할 수 있다.
중국도 이제 한국에 대해 형식문제에 관한한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양국 외무장관은 장쩌민(강택민) 공산당 총서기의 방일결과와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방한결과 등에 대해서도 서로 설명해주는 등 회담 내용 역시 상당히 우호적인 것이었다는 것이 배석자의 설명이다.
양국은 그동안 외교관계를 배제하고 경제적인 교류만을 확대해오다 지난해 10월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외무장관 회담을 시작했다.
외무장관 회담은 6개월만에 세번이나 이루어졌으며 1차는 제3국(뉴욕),2차는 서울,3차는 북경이라는 단계를 밟아왔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2차 외무장관 회담을 가진 이후에는 양국의 수도에 설치한 무역대표부가 상대측의 외무부와 접촉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일반 대표부로 승격시켰는데 이번에는 「지도자간의 직접 접촉」 필요성이 중국측에 의해 강조됨으로써 이 역시 단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군다나 양국의 관계 정상화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수교 필요성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어 냈다.
양국 외무장관은 오는 9월초 방콕에서 개최되는 아태경제협력각료회의(APEC)와 9월하순 유엔총회에서 다시 만나기로 다음 회동까지 약속해 이 원칙에 기초한 구체적인 논의의 진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까지의 외무장관 회담이 유엔총회·APEC·ESCAP라는 국제회의 참석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회담을 위한 사전 의견 조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 한국측의 불만이었다. 이번 외무장관 회담까지도 외무부의 어느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회담장에 들어가야 하는 그런 상태가 계속돼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음 회동을 약속함으로써 사전 협의가 회담을 갖는 형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외무장관 회담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자문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될 수 있게 됐다. 또 무역대표부 대표라는 이유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외교부관리의 접촉도 금지됐던 노재원 대사가 리펑(이붕) 총리와 전외교부장을 배석자로서 면담함으로써 이제 북경 대표부와의 「정무」 문제 협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측이 이렇게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동안 중국의 운신의 폭을 제한해온 한반도 정세가 화해분위기로 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일단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은 받아들이기로 방침을 정해 핵안전협정의 발효를 마쳤고 이로 인해 진전을 보지 못하던 북한과 미국·일본 사이의 관계개선이 돌파구를 찾게 됐다. 이에 따라 남북과 주변관계국들간의 관계개선이 가시권내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한중외무장관 회담은 양국관계 정상화의 시간표를 예측가능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북경=김진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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