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의 「신뢰성」이 원동력/영국 총선 보수당 승리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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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변속 예상깬 연속4기 집권/사회주의에 대한 불신을 반영/감세정책 주효… 「대처리즘」 평가와는 별개
9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이 당초 예상을 깨고 과반수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보수당의 재집권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로써 보수당은 지난 79년 마거릿 대처가 이룩한 압도적 승리이후 연속 4기 집권의 대기록을 세우게 됐다.
선거직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까지 보수당은 노동당에 근소한 차로 뒤지거나 거의 대등한 경쟁을 벌여 어느 당도 안정적 집권에 필요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이날 투표가 끝난 직후에 발표된 엑시트 폴(투표장에서 나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도 비록 보수당이 노동당보다 다소 앞서지만 과반수에는 크게 못미쳐 「헝 팔러먼트」(군소정당과의 연립내각)가 거의 확실하다는게 여론조사를 실시한 BBC나 ITN텔리비전의 분석이었다.
그러나 개표가 진행됨에 따라 예상치 않았던 선거구에서 보수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속출함으로써 이날의 대반전을 서서히 예고했다.
개표가 50%선을 넘어서면서 보수당의 절대과반수 의석 확보가 확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록 87년 총선에서 확보한 3백68석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보수당이 과반수를 넘어서는 안정적 승리를 이룩한 것은 존 메이저 총리 개인에 대한 영국 유권자들의 신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당초 선거전이 시작되던 당시 보수당에 대한 지지율은 노동당 지지율보다 낮았으나 메이저 총리 개인의 인기도는 60%선을 상회,노동당의 닐 키노크 당수와 현격한 차이를 보였었다.
보수당은 싫지만 메이저 총리 개인은 믿을만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날 투표에 참가한 한 유권자는 『어느 당에 찍을지 끝까지 망설였다』고 말하고 『비록 지난 13년간 집권한 보수당은 싫지만 메이저 총리에게 한번 기회를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막판에 보수당으로 결정했다』고 말해 이번 이변의 배경을 말해주고 있다.
영국의 정치분석가들은 마지막 부동표가 보수당으로 몰린결과 이같은 예상밖의 일이 발생했다고 분석하고 이는 선거운동기간을 통해 진지한 자세를 보여온 메이저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사실 보수당 자체는 국민들에게 산뜻한 매력을 잃은지 오래다. 보수당은 13년의 장기집권으로 지쳐있는 느낌인데다 경제불황도 30년대 이래 최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당인 노동당은 유권자들이 볼때 더욱 신뢰할 수 없는 정당으로 인식된듯 하다. 70년대 노동당 집권 시절이 고세금·노조파업으로 얼룩졌을뿐 아니라 십수년간 집권에 실패함으로써 경험이 없는 정당으로 인상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선거과정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세금이 오를 것이라고 경고,이를 주요 선거쟁점으로 계속 밀어붙임으로써 부동표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보수당이 거둔 이번 승리는 대처리즘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일반적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 임한 유권자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의료제도(62%) ▲교육(42%) ▲경기침체(38%) ▲주민세(33%) 등을 들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대부분 강력한 사유화와 정부 간섭배제를 바탕으로한 대처리즘 13년의 산물이라는게 영국 국민들의 일반적 평가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보수당을 다시 선택함으로써 보수당의 통치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처리즘의 전반적 결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면서도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감세정책에는 국민들의 현실적 이해가 이번 선거결과로 이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당초 이번선거에서 보수당을 제치고 집권당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노동당의 패배는 사회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그동안 키노크 당수는 당내의 급진좌파를 제거하고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현대민주정당으로 당체질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과거의 좌파적 이미지를 크게 벗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고질적 영국병의 원인이 됐던 좌파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을 완전히 불식시키는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이다.<런던=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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