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금된 「사랑의 모금」(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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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어떤 방법으로든 도움을 주려 했는데…. 오늘 이 자리도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되었어요.』
3일 오후 4시 서울 개봉3동 「가든 멀티비전」 지하레스토랑.
꺼져가는 한 어린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성금모금회」를 열고 있던 이웃주민 20여명은 호박죽·떡 등 음식을 나르던 일손을 놓고 뒤늦게 알려진 뜻하지 않은 비보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뇌종양 수술을 받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채 이날 오전 끝내 숨진 개봉국교 1년 이미애양(7)을 위해 모금한 병원비가 「조의금」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하던 미애는 지난해 12월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백지장 처럼 얇게 야위어갔다. 그러나 보증금 2백만원,월세 12만원의 4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네식구가 기거하며 노동일을 하는 아버지(31)와 신문배달을 하는 어머니(28)의 수입으로는 병원진찰을 엄두도 낼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마저 운동중 넘어지면서 뇌를 다쳐 누워버렸다.
결국 지난달 23일 미애는 쓰러졌고 진찰결과 악성뇌종양 선고를 받아 급히 수술에 들어갔지만 이미 늦어 혼수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주민들은 지난달 31일 즉시 모금운동에 착수,반나절만에 50여만원을 모았지만 이 돈으로 수술비·입원비 등 2백만원을 대기엔 턱없이 모자라 이같은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
이날 아침부터 레스토랑에는 2천원부터 5만원까지 주민들의 성금이 줄을 이어 예상액의 두배인 2백여만원이 모금됐다.
『미애를 깨어나게 할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때문에 하루종일 힘든줄 몰랐어요. 하지만 이 돈이 병원비 아닌 조의금이 될 줄이야….』
침울한 분위기에도 불구,예정시간을 한시간 더 연장하기까지 한 주최측의 바삐 움직이는 손길과 계속 이어지는 주민들의 성금행렬은 「정이 살아있는 우리 이웃」을 느낄수 있게 했다.<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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