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합헌」의 함정/권영민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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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헌법재판소는 25일 위헌제청신청사건 두건에 대한 결정선고공판을 열어 상속세법 위헌심판사건에서는 위헌결정을,군사기밀보호법 위헌심판사건에서는 한정합헌결정을 각각 내렸다.
헌재의 위헌결정은 결정선고와 동시에 문제가 된 법률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킬 뿐 아니라 당해사건을 포함,위헌결정 당시 헌재에 위헌심판이 계류중이거나 위헌을 전제로 소송중인 사건 모두에 대해서도 효력을 미치게돼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즉 문제가 된 상속세법 제29조의 4 제2항은 위헌결정으로 법률적 효력을 상실,이 조항에 따라 가족으로부터 넘겨받은 증여재산중 포함된 빚에 매겨진 세금의 부당성을 다퉈온 사람은 재판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게 됐다.
또 세무서는 이제 과세사실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증여세를 부과해온 수십년간의 안일한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발로 뛰고 확인하는 세무행정을 펴지않을 수 없게됐다.
이에 반해 한정합헌결정은 법률자체가 합헌이라는 전제하에 그 해석과 적용을 엄격히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제시일 뿐 구속력이 없어 상징적 의미 외에는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다.
게다가 헌재는 집시법·국가보안법 등 정치적 의미가 있거나 시국과 직결되는 법령에 대해서만 유독 「한정합헌」이란 편법을 사용,「합헌이기는 하지만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결정을 내려 체면유지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정합헌결정은 법률을 운용하는 당국이 자의적인 행정을 계속하거나 입법부·사법부가 문제된 법률의 개폐,또는 판례변경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강제할 수 없으므로 언론을 통해 여론은 환기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군기법의 적용이 완화된다거나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부분이 축소된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날 결정에서 유일하게 위헌이라고 소수의견을 낸 변정수 재판관이 『한정합헌이란 이름아래 위헌요소가 있는 법률을 변조해 존치시키고자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책무를 저버린 것으로 이같은 처사자체가 위헌』이라며 헌재의 소신없는 처사를 스스로 통렬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결정선고후 『헌법재판소가 권위를 인정받고 국민의 신뢰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위헌이든 합헌이든 특정법률의 헌법침해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할 것』이라는 한 헌법재판소 간부의 독백은 「한정합헌」이란 말장난의 잘못을 잘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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