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올고함(孤喊)

찬성의 북, 반대의 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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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함이란 고독한 외침이란 뜻이다. 도올이 어찌 고독하기만 하리오마는 역사 진보의 뒤안길에는 항상 고독한 함성이 자욱이 깔리게 마련이다. 제3의 개국이라 세칭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렇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했다 해서 고려 말 사회의 난맥상이 하루아침에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려 사회의 문제점은 조선 중기 선조 때까지 지속되었고 비극적으로 악화되었다.

한.미 FTA가 지향하는 가장 객관적인 사회 비전의 사실은 미국의 시장중심 경제 작동원리에 기준하여 우리의 경제 구조와 체제를 변화시킨다면, 바로 그 변화가 우리 사회의 합리성과 보편성을 증대시키고 샌드위치 상태를 뛰어넘는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기대에 머무는 사실이다.

찬성론자들은 과거 비관적 국난의 절기마다 우리 민족은 그 난관을 낙관으로 변화시켜 왔다고 자신감을 토로하지만, 박정희 시대부터 오늘까지 난관을 극복해 온 주체는 광범한 민중의 소리 없는 희생과 헌신이었다. 그러나 요즘같이 퍼진 세상에서 그런 낙관이 지속될 수 있는지, 문명의 해체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되짚어 볼 일이다. 타결된 마당에 웬 말인가 하겠지만 찬성의 북보다는 반대의 징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언할 수 있다. 그것도 막연한 동어반복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구체적 가부를 설득력 있는 논리로써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 내용, 즉 구두의 보고가 아닌 정밀한 문안의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의 주체인 국민에게 꼼꼼한 검증을 받을 수 있는 생산적 토론의 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협상이란 최악의 경우 때려칠 수도 있다는 깡다구가 없으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어렵다. 약자의 깡에는 한계가 있다고 변명하겠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있어서 한.미 FTA가 갖는 중요성은 생각보다 심대하다. 미국은 함부로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 국민은 당당해야 한다.

일부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은 한.미 FTA 매달리기를 통해 이념적 일관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다. 진보나 개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상실케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명분은 남아 있다. 한.미 FTA 타결을 통해 북한을 세계의 보편적 경제권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의 추후 결정이라는 단서가 미국 중심의 이현령비현령 논리에 휘둘리는 장식품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그 조항을 명분 아닌 실리로서 확실하게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나는 인류의 역사가 반드시 진보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FTA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공통의 선(善)을 향해 서로가 최선을 다해 우리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건설할 수 있게 되기만을 기원한다.

김용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