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과 설날은 구별돼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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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 첫날과 설날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과 생활속에 잠재되어 있는 신정과 구정의 이중구조에서 벗어나 새해 첫출발의 신정과,차례·귀향·세배의 민속절인 설날을 분명히 구별하는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일제의 잔재인 이중과세 의식이 우리 마음속에서 청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신정과 구정은 아직도 월력의 의미로 남아있다. 아무도 음력을 꼽지 않으면서도 굳이 새해만은 음력으로 계산하는 의식이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설날은 그냥 설날이면 된다. 음력상의 새해가 아니라 중국식의 춘절이고 세시풍속상의 까치 설날이면 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의 전환이 없기 때문에 양력 새해에도 2일에서 5일간 놀고 음력새해에도 5일 내지는 1주일을 놀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굳이 경제적인 이유를 들지 않는다해도 의욕에 찬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세워나가야 할 새해 벽두부터 두달에 걸쳐 이주일씩을 휴일로 보낸다는 사실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설날의 부활이 잘못되었거나 설날 연휴 3일이 길다고 탓하자는게 아니다. 오히려 민속절의 양성화는 잘된 일이고 귀향 교통을 감안한다면 3일 연휴가 길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신정연휴 이틀이 토·일요일과 연계되면서 설날과 같은 긴 연휴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신정 연휴가 이틀인 한 대체로 주말과 연계되면서 산업체의 작업능률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에 기업주는 연달아 놀게하는 편법을 쓰게된다.
이에 맞춰 텔리비전 프로마저 신정을 설날로 착각하고 색동 저고리에 세배에 윷판까지 동원해서 설날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바뀌지 않은 이중과세의 풍속을 방송매체가 더욱 부채질하는 느낌이다.
설날 연휴 부활이 양성화된지 2년째 2중과세의 풍속이 일제가 아닌 산업화 시대의 오늘 재현되고 있음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논다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니다. 새해 첫날부터 할일없이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행락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수출은 격감하고 외채는 쌓여가는 판에 새해 첫날부터 그것도 하루가 아닌 이틀,심지어 5일까지 산업현장을 비워둔채 허송세월을 한다는 사실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인 것이다.
정부도 이 점을 감안해서 신정 연휴 2일을 1일로 줄일 여론 수렴을 실시키로 했다. 잘못되어가는 풍속은 제때에 바로 잡아야 한다. 신정과 설날을 구별하는 의식의 전환을 위해서도 신정은 하루의 휴일로 해야하고 그 하루가 노는 하루가 아니라 자신의 지난해를 되돌아 보고 새해의 앞날을 계획하는 유익한 새해 첫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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