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돈줄 쥐었지만 할 말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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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단 15명이 22일 오전 서울 을지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3불정책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영산대 부구욱, 한동대 김영길, 서강대 손병두, 이화여대 이배용, 원광대 나용호 총장과 경남대 함택영 부총장.[연합뉴스]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대학 총장들이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노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평준화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다. 그 핵심이 3불(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정책이다.

158개 사립대 총장 모임인 한국사립대학교총장협의회(회장 손병두 서강대 총장)는 3불 폐지를 정부에 공식 건의키로 22일 의견을 모았다. 손 회장은 "세계 일류 대학으로 뻗어나가려면 교육부가 입시에서 손을 떼고 3불정책을 폐지해야 한다"주장했다. 총장들은 교육부는 물론 대선 주자들에게까지 3불정책 폐지를 건의해 정치쟁점화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대 교수들과 사립대 총장들까지 정부의 교육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정부와 대학은 정면 충돌양상이다. 교육정책의'레임덕'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08학년도 대입에서 학생부 비중을 50%까지 높일 것을 대학 측에 종용했지만 상위권 대학들은 거꾸로 비중을 낮추고 있는 실정이다.

◆ 총장들의 집단 반기=총장들의 집단 반기는 예고된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2007년 어젠다로 '대학은 대학의 손에 맡기라'(1월 29일자 1, 4, 5면)는 기획 시리즈를 내보냈다. 한 사립대 총장은 "정부의 대입.행정.재정 규제가 너무 심해 냉가슴만 앓고 있었는데 속이 시원하다"며 "총장들이 나설 때"라고 했다. 총장들이 '할일'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총장들은 그동안 돈줄을 틀어쥔 교육부에 밉보일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할 말은 하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1월 12일 서울 숙명여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대교협 신년 정기총회가 신호탄이었다. 이날 신임 회장에 선임(4월부터 임기)된 서울대 이장무 총장은 "자율권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자율권 확대가 올해 최대 안건임을 내비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22일 사립대총장협의회의 3불정책 반대 공식 입장 표명으로 이어졌다. 사립대협의회와 대교협은 대학 자율화 침해 실태에 대한 사전 조사를 했다. 조사는 지난해 말부터 대학별로 진행됐다. 대교협 권영건(안동대 총장) 회장은 "조사 결과 학사운영.교수임용권.대입.재정 등 각 분야에서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규제 항목만 15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특히 3불정책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가 3불 반대 총대를 메자 사립대 총장들도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권 회장은 "이달 중 자체 자율화위원회를 가동해 구체적인 자율권 침해 사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대교협뿐만 아니라 사립대협의회에서도 자체 자율화위원회를 구성한 만큼 두 위원회가 공동으로 3불정책 등 자율권 침해 전반에 대한 본격 논의를 할 방침이다.

◆ 3불정책 수정될까=당장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은 22일 "3불정책을 근간으로 한 공교육 정책을 절대로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강한 톤으로 말했다. 그러나 올해 말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3불정책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손 회장도 "대선주자들의 교육정책을 따져보고 3불 폐지를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3불정책 폐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불안과 계층 간 교육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교육부 관료들 사이에서도 "차기 정권에서는 3불정책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외대 김춘식 교수는 "교육정책이 정치논리에 따라 왔다갔다해서는 안 된다"며 "교육 관료들의 소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 3불(不)정책=대학 입시에서 본고사.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한다. 본고사는 '논술고사 외에 필답고사를 실시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기여입학제는 '공정한 경쟁에 의해 공개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규정에 각각 위반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고교등급제의 경우 금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없다. 대신 교육부는 고시나 지침 형태로 3불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적 기반이 미약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회의 참석자:서강대 손병두 총장(회장), 국민대 김문환 총장(부회장), 경남대 함택영 부총장, 대진대 이천수 총장, 백석대 장종현 총장, 영남대 우동기 총장, 서울여대 이광자 총장, 영산대 부구욱 총장, 원광대 나용호 총장,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 인하대 홍승용 총장, 한남대 이상윤 총장, 한동대 김영길 총장, 한서대 함기선 총장, 호남대 이현청 총장(학교명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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