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에 끼인 한국 FTA마저 뒤처지면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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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교육인적자원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안성식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협상팀은 30일 타결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협상 타결이 임박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 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강도도 세졌다.

21일 오전 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 회의에서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원칙대로 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하루 전에는 FTA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농업도 시장 원리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가 후보 때 계란을 맞은 적도 있는데 이제 계란을 던져서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20일의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농어업인 부문)'에는 한.미 FTA에 반대해 단식 농성 중인 농민단체 회원이 대거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마음을 졸이며 들었다"고 할 만큼 분위기가 긴장됐다. 여기에서 노 대통령은 반대론에 정면으로 맞섰다.

한.미 FTA는 미국과 협상이 끝나도 노 대통령에겐 또 하나의 고비가 있다. 국회 비준을 거쳐야 발효되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유력 대선 주자들은 벌써부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 대통령이 협상 타결을 앞두고 반대론자들을 향해 발언 수위를 높여가는 건 그 예비전의 성격이 짙다.

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대미 자주외교 노선을 주창해 왔다. 그런 노 대통령이 한.미 FTA의 전도사로 변모한 이유는 뭘까.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강조했다.

하나는 개방의 불가피성이었다. "경쟁을 안 하고 선진국으로 갈 방법은 없다. 특히 밀려서 개방하는 게 아니라 개방을 주도해 나가야 할 수준에 왔다. 여러 나라와 FTA를 해야 하지만, 하는 김에 시장이 제일 큰 미국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중국.일본과의 경쟁을 꼽았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다. 이왕 할 거라면 FTA마저 일본에 뒤처져선 안 된다. 중국과도 멀지 않은 장래에 FTA를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미국과의 FTA는 이를수록 좋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능동적 개방에 관한 소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은 방향이나 원칙이 옳다고 판단되면 개인적인 유.불리를 감안하지 않고 결정하는 스타일"이라며 "이라크 파병 결정, 대연정 제안, 개헌 제안 등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미 FTA가 결실을 보려면 무엇보다 진보 세력의 반대를 극복해야 한다. 노 대통령 입장에선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우군(友軍)들을 상대로 한 싸움이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손해를 무릅쓰고 결정을 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지난해 8월 노 대통령은 "나도 변호사 시절 종속이론 책을 섭렵했는데 한국 사회에 맞지 않아 폐기했다"며 "진보도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고 좀 달라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진보적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다"고 한 20일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협상 체결 후 국회 비준을 위해 노 대통령은 직접 반대자들과의 토론에 나설 생각이라고 한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 등 대선 예비주자들은 물론이고 반대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공개 토론회도 계획하고 있다. "원칙이 우군이며 국민의 상식과 원칙의 힘을 믿고 할 일 하고 할 말 하는 게 참여정부 5년차 전략"이라는 노 대통령의 21일 발언은 그 신호탄이다.

박승희 기자<pmaster@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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