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문제,속임수로 해결되나(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하늘은 겨울철만 되면 뿌옇게 흐려져 시계가 나빠진다. 도심 뿐이 아니고 인근 교외나 산야도 마찬가지다. 북한산에 올라서 보면 불과 몇㎞ 안떨어진 도봉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희뿌연 매연이 산마저 휩싸고 있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상공은 짙은 회색의 구름 같은 매연으로 뒤덮여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경우 인체에 해로운 유독가스가 단기환경기준을 몇배씩 초과하고 있다. 단기환경기준이란 1년에 3회이상 초과할 경우 인체의 건강에 직접적인 해가 있는 수치다. 금년 초 미국의 월드워치연구소가 발간한 「90년 지구환경보고서」는 서울이 환경기준초과일수에서 세계 3위의 대기오염 도시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정부가 발표한 수치를 놓고 한 평가일 뿐 실제로는 오염의 정도가 훨씬 심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드러났다. 정부가 발표한 대기오염 수치가 엉터리라는 것이다.(중앙일보 3일자 23면)
서울시와 환경처는 서울시내에 20개의 대기오염자동측정기를 설치해 놓았는데 이 기계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거나 고장이 나 가동정지상태에 있음이 밝혀졌다. 이목이 집중돼 있는 서울이 이럴진대 지방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전국 28개 도시의 72군데에 설치돼있는 측정장치 또한 설치장소가 부적절하거나 고장이 잦아 정확한 오염실태 파악이 안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늘이 맑은 날이나 매연으로 뿌연 날이나 서울시청앞의 대기환경상태 전광판은 항상 「보통」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이를 쳐다 보려고도 않고,또 쳐다보아도 믿질 않는다.
근거가 확실치 않은 환경오염수치를 마치 사실측정치인양 발표하는 당국의 처사는 국민에 대한 기만이요,배임이라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 엉터리 수치를 발표해서 덕을 보는 자들은 담당기관 밖에 없다. 고장난 계기를 고칠 생각은 않고,자신들의 나태와 직무유기를 호도하려는 잔꾀로 해서 국민의 건강이 희생되는데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문제에 대한 대책은 그 문제의 실상파악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극히 기초적인 상식에 속한다. 특히 공해문제에 있어서는 전체 국민의 협조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실상의 심각성을 절감시키기 위해서 정확한 오염수치를 있는 그대로 주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비롯해서 동물·식물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물은 한순간도 숨을 쉬지 않고서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경제의 개발과 성장,소득의 증대로 아무리 잘 먹고 잘 산다해도 쉬는 숨을 통해 독극물을 들이마셔야 한다면 그 풍요와 안락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그러한 문제는 집이나 차안에 설치하는 공기청정기 따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떤 부담을 감수하면서라도 대기오염 만은 건강유지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오염농도의 측정과 이를 국민에게 널리 주지시키는 일 부터 철저히 이행돼야만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