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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법 잃어 현대시조 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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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시대적 상황이나 삶을 담아내는 비유법을 잃은 것이 현대시조의 위기를 몰고 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경렬씨(서울대영문과교수)는 최근 출간된 시조선집 『현대시조 28인선』(청하간) 책 끝에 실린 논문 「시간성의 시학-문학장르로서 시조의 가능성」에서 『당대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작자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삶을 지시하는 전통시조 고유의 수사법인 비유법을 버리고 초시간적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불변의 시적 의미를 드러내려는 서정시의 고유영역인 상징법을 택한 것이 현대시조의 위기』라고 봤다.
장씨는 『음악이 빠져 나가버린 시조에서 음악이 차지하고 있었던 자리를 무엇인가로 메울 수 있읕 때 시조는 현대를 살아남는 장르가 될 것』이라는 김대행씨(이화여대교수)의 논리를 반박하며 『전통시조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닌 독자적인 「시」로서의 기능을 잃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씨에 따르면 특정한 노랫말을 대상으로 고유한 음조가 창작됨으로써 노랫말이 음악에 「동화」되고 마는 가요·가곡과는 달려 몇 개의 창법이 노랫말에 앞서 존재하는 전통시조의 경우 창법과 노랫말은 동등한 위치에서 「대등한 결합」의 관계를 형성, 시로서의 자족성를 지녔다는 것. 때문에 전통시조의 음악적 요소는 노랫말을 효과적으로 영창하기 위한 장치로 현대시조에서는 음수율이라는 형식요건이 어느 정도 음악적 요소를 떠맡고 있기 때문에 현대시조의 위기를 음악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문학성에서 찾아야 된다며 그것을 알레고리, 즉 비유법 내지 우의법에서 찾고 있다.
장씨는 알레고리는 특정한 시간의 의미를 지시하는 기호로 이 수사학에 기대 전통시조는 초월적 이상세계가 아닌 구체적 인간세계를 다루고 있으며 현실적인 시간 속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인간들의 감정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시간적인 변화에 영향받지 않고 항상 일정한 의미를 지시하는 초시간적 기호인 상징에만 기대 영원성의 환상만 꿈꿔 시대를 담아내지 못하고 침체의 늪을 허덕이고있다고 비판했다.
장씨는 『일제하 경향문학파에 대응, 국민문학파에 의해 「전통적인 민족정신의 계승」이라는 명분아래 주도된 시조부흥운동의 역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보편적 정신구현이 시조를 알레고리에서 상징으로 이행시키며 초역사적인 진공상태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하며 시조의 현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병기씨도 『전통시조가 담고 있었던 사실적 삶의 세계, 비판적 알레고리의 세계를 버리고 정지된 영원성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환상에 얽매인 자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결론부분에서 현대시조의 위기는 『시조의 정령을 무시하거나 질 낮은 시조의 양산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알레고리라는 시조의 고유한 수사학적 세계의 상실에서 이미 예정됐던 것』이라며 『알레고리로서의 시조의 가능성을 현대라는 시간적 관점에서 새롭게 모색할 때 현대시조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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