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같은 방바닥이었는데…설 땐 따뜻한 집에서 있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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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안묻게 조심해" "끌로 외벽을 다 벗겨야하니까 사다리 꼭 붙들고 있어"

12일 오전 9시. 부산시 동구 수정4동의 골목길이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험준한 비탈길 계단을 올라 1m도 채 안되는 통행로에 자리잡은 낡은 집에 군복바지와 '사랑의 집짓기'라는 노란 조끼 차림의 젊은이 10여명이 북적였다. 한 청년은 먼지를 뒤집어 쓰며 페인트칠을 하는데 여념 없었고 또다른 청년은 아슬아슬한 계단 가운데 사다리를 놓고 울퉁불퉁한 외벽을 정리하느라 정신 없었다.

▶12일 동의대 건축설비공학과 학생들이 김강석씨 가족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푸른색 페인트로 외벽을 칠하고 있다.(좌) 김강석.오윤비씨 부부가 새단장된 집 앞 현관에 서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우)

동의대 건축설비공학과 교수들과 학생 10여명이 청각장애인 김강석(46).오윤비(44)씨 가족의 보금자리를 보다 쾌적한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대학생 판 '러브하우스'다. 동의대 '행복하우스' 운동은 부산 내 무주택가정이나 주거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극빈 가정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자 동의대 건축설비공학과 학생들이 힘을 모아 시작한 봉사활동. 매년 설을 맞아 벌이는 활동으로 2005년 시작해 올해가 3호째다.

행복하우스 3호의 주인공인 김씨 가족은 15평도 되지 않은 협소한 공간에서 10년 넘게 10명의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김씨 부부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김씨 남동생, 성복(18), 혜진(12), 성현(11), 성지(8), 혜선(4), 그리고 쌍둥이 형제 성건(3)과 뇌성마비 2급인 성강이다. 무직인 김씨 부부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집에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주어지는 생활보조급여 90여만원으로 살고 있다. 단열재는 전혀 깔려 있지 않아 난방이 되지 않고 옥상에서도 물이 새기 일쑤다.

학생들은 이들에게 보다 안락한 집을 만들어주기 위해 지난 5일 작업에 돌입했다. 단열재와 보일러를 깔고 옥상에 방수 시설을 추가로 설치했다. 입주 하루 전인 이날은 어머니 오씨가 아이들을 위해 고른 야광벽지가 도배되고 장판이 새로 깔리는 등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부서져내린 외벽은 아이들의 희망을 담은 푸른색 페인트로 칠해지고 있었고 허물어진 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겨울엔 방바닥이 얼음장 같아서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많았는데 이제 따뜻한 집에서 오순도순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김씨는 "도움을 주신 분들께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못 갚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2회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송재영(26.동의대 건축설비학과 3)씨는 "집이 완공된 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공사 작업을 지휘하던 이성 교수는 "학생들의 인건비가 들지 않아 공사비는 300여만원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며 "사랑의 힘은 생각보다 큰 돈이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필요한 자재는 부산의 엔지니어링 업체 두곳에서 협찬받고, 공사기간 중 식대 등은 학교 측에서 일부 지원한다. 김씨 가족의 새집 입주식은 13일 오후 3시에 열려, 이들은 '내 생애 가장 따뜻한' 설을 보낼 예정이다.

동의대 '행복하우스 1호'는 동구 수정5동에 위치한 생활보호대상자인 권택 할아버지 집이 선정돼 48일간의 공사를 거쳐 2005년 2월 입주식을 가졌다. 2호는 동구 초량동 노순 할머니의 55년 된 흙집을 3주간 리모델링해 보일러시설과 부엌을 새로 설치하고 실내를 원룸형식으로 개조했다.

부산=글.사진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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