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역조 기술 이전 한일 시각차 크다-양국 실무자·전문가 대 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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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일간 최대현안인 무역역조와 기술이전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의 전문연구원과 전·현직관리들이 치열한 지상논쟁을 벌여 관심을 끈다. 또 과거청산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의 의견이 제시됐다. 월간 『한국논단』(발행인 양호민) 8월호는 「한일 대논쟁」이란 특집에서 양국간 논쟁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양국의 지상논쟁에서는 무역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는데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양국간 무역불균형은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주장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경제동물 일본을 규탄해왔다. 「한국논단」측은 『양국간 생산적 미래창출을 위해 솔직한 의견을 들어보자』며 특집을 마련했다. 한국은 무역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한 민·관 차원의 협력과 기술이전이 동북아공동번영의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반면 일본측은 이미 많은 기술이전 등 노력을 기울였으나 오히려 한국측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반박한다. 무역역조와 기술이전이라는·현안을 둘러싼 양국의 대립된 주장을 대비해 본다.

<무역역조문제>
▲한국측 입장(김도형 산업연구원 무역정책실장)=80년대 전반까지 아시아-태평양경제권내의 어느 나라든 일본과의 2국간 무역불균형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자간 수지균형과 산업기술협력 메커니즘에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예상대로라면 2000년대에는 일본은 기계류비교우위속에 제품수입이 늘어나는 선진형 무역구조가 정착된다. 한국 등 신흥공업국(NICS)은 노동집약적산업을 ASEAN국가들에 넘기고 국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로 성숙한다. ASEAN국가들은 새로운 신흥공업대열로 들어선다. 아시아-태평양성장벨트가 종층적 산업·무역·기술발전 메커니즘 속에서 공동번영 한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80년대후반 이후 한국은 성장의 중간고지기능을 상실한채 세계도처에서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밑으로는 ASEAN국가들로부터 추월당하고 있다. 한일간의 구조조정과 산업기술협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최근 대일무역 불균형 확대는 한일양국 관·민 모두의 대응력 부족 때문이다. 한국측은 경기 순환적인 3저 호황·국제수지흑자를 문자그대로 「흑자기조」로 착각했다. 성급히 수입과 내수확대에 나섰으며, 일본자본재수입과 함께 불필요한 소비재수입까지 폭증했다. 89년 수출물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는데도 「무역수지흑조」라는 허상에 매달려 금융긴축을 지속, 설비투자를 위축했다.
또 북방정책에 현혹된 기업은 일본시장 개척노력을 북방으로 돌렸다.
한편 일본은 수입확대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선진국위주로 꾸려나가 우리나라에 대한 관세·비관세장벽은 여전했다. 그나마 합작형태로 국내 진출했던 일본기업들도 투자환경악화를 이유로 철수하거나 ASEAN국가로 옮겨갔다.
아무리 민간의 교역행위라도 국민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정부차원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우리의 대일 적자확대는 부가가치의 과다유출을 뜻하며, 방치될 경우 다국적기업의 국제하청이라는 멍에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한일 양국의 무역불균형은 관·민 협조하에 달성가능 한 주요정책목표로 설정돼야한다.
▲일본측입장(시모고지슈지·하황지수이·주한일본대사관경제참사관)=국제적 시각에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일본제품의 수입은 한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국제무역은 단순히 두나라 사이에 균형을 이뤄야 할 필요가 없으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면 된다.
65년 국교정상화당시와 비교할 때 한국의 대일 수출품은 농수산물에서 가공품으로 변해왔다. 따라서 완만하지만 양국 경제구조는 수평 분업화되어 가고있다.
최근 대일 무역적자증대는 「설비투자용 기자재의 수업증가」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설비투자수입이 한국제조업생산성을 제고시키고 국제경쟁력 회복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오히려 한국의 차별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막기 위한 「수입선 다변화품목제도」는 일본의 대한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 일본의 제조기기를 수입할 수 없으면 투자의 매력은 반감된다. 한국의 대일 이미지를 버릴 뿐이다.
무역불균형의 다른 한면인 한국의 수출부진은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 저하가 주원인이다. <기술이전문제>
▲한국측 입장 (한재석 상공부수출 2과장) =대일 무역적자의 근본원인은 가공무역을 성장전략으로 택한 우리 산업구조의 취약성과 양국간 기술격차에 있다. 따라서 일본의 기술이전은 우리 나라 산업구조 고도화와 지속적 경제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일본의 투자와 기술이전은 우리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며 함께 증가해왔다. 그러나 최근 기술보호주의에 따라 기술도입건수는 줄어들면서 기술사용료는 급증하는 추세다.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건수는 전체 외국기술도입의 51%로 막대하다. 그러나 사용료는 전체의 32%로 적은데 이는 도입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뜻한다. 고급기술이전을 가장 꺼리는 것이 일본이라는 의미다.
한일간 기술협력은 일방적 기술이전이 아닌 상호보완적 협력관계 형성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자본·기술에 한국의 특화기술과 우수한 노동력이 결합하는 것이다.
양국간 기술격차 축소와 장기적 협력이 공동번영 방안임을 확신해야한다.
민간기술 이전촉진을 위한 정부간 정책적 노력이 특히 필요하다. 일본정부는 기술이전정책을 수립하고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실현해 가야할 것이다.
▲일본측 입장(마쓰모토 고지·송본후치·전통산성공업기술원과장·현 기옥대교수)=양· 질 모든면에서 일본은 어떤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 많은 기술을 이전해왔다.
기술료가 적다고 이전된 기술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일본의 기술이전은 서구국가들과 다르게 한국내 합병기업을 경유해 이뤄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간기업간 기술이전은 사고 파는 당사자간의 거래행위다. 따라서 많은 개발자금을 투입해 얻은 귀중한 기술이라면 그만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한국 측의 자세다. 한국의 기업과 정부는 일본기술의 가치를 국제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본기업은 이밖에도 한국과의 기술거래에 불만이 많다. 수출시장·부품구입 등 제한조항이 인정되지 않거나 계약종료 후 기술이 보호되지 않는 것 등이다.
무역역조시정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 역조의 확대를 초래하는 기술이전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도 모순된 면이 있다.

<기타>
한편 『한국논단』은 이같은 경제현안외에 과거청산·교포문제·국가전략 등에 대해서도양국 논객들의 주장을 싣고 있다.
국내에서도 출간된 『가까운 나라일수록 비뚤어져 보인다』(평민사간) 의 저자인 하야시 다케히코(임건언) 동해대교수가 과거청산문제와 관련, 『한국의 책임부분도 있다』고 주장하는 등 철저히 일본측 입장에서 양국간의 예민한 현안을 다루고있는 내용들이라 적잖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하야시 교수는 개항과 관련, 박규수의 개국주장을 원용하면서 당시 지배층의 화이관을 비판한다. 서구열강이 함포외교로 세계분할경쟁에 들어간 당시 조선 역시 일본의 황제칭호사용에 반대해 쇄국하기보다 넓은 시각에서 국교를 수립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에 당한 힘의 논리를 조선에 가르친 셈이라는 주장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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