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셰바르드나제 전격 하야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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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3일 오후 7시쯤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 외곽 5km에 자리잡은 대통령 관저. 얼어붙을 듯 냉랭한 분위기. 야당 지도자들 앞에 선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깊고 어둡게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무겁게 떨어진 한마디. "물러난다."

그날 낮까지 "사퇴는 있을 수 없다"며 강경했던 셰바르드나제였다. 반정부 시위대가 전날 의사당과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관저를 습격하겠다는 위협이 있어도 고집은 여전했다. 오히려 "점령 중인 대통령궁을 즉각 떠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한다"는 통첩을 발표하며 버텼다.

그러나 곧 허물어져야 했다. '형제국'으로 여겼던 러시아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로 여겼던 미국도, 국민도 모두 등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23일 새벽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손에 '총선 재실시 수용, 대통령 퇴진 거부'라는 카드를 들고 야당 지도자들과 연쇄 접촉한 이바노프 장관은 오후가 되자 입장을 바꿨다. "모스크바가 셰바르드나제를 끝까지 지원할 수 없다"며 거꾸로 중대 결심을 요구한 것이다.

오후 들어 일부 군인과 고위 관리들이 야당에 가담하고, 군대와 경찰이 시위대에 호의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오면서 그의 얼굴은 굳어갔다. 그가 그렇게 믿었던 미국도 끝내 한마디를 안했다. 선거에 대해 "민의 반영이 안 됐다"는 성명을 발표하더니 사태 중재를 위해 트빌리시를 방문하겠다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사면초가(四面楚歌).'카프카스의 여우'를 자처하는 셰바르드나제도 30년 영광의 세월을 되뇌며 '무조건 사퇴'라는 치욕의 항복 문서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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