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교류에 시행착오 없도록(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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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관계개선을 위한 정부의 정책이 이전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6일 밴쿠버에서 밝힌 남북한교류에 관한 제안들과 이를 바탕으로 정부당국이 마련중인 방안들에서 우리는 그러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 노대통령의 제안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내용은 정부가 일방적인 요구라고 유보해왔던 북한측 제안들을 수용하겠다는 형태를 취하면서 그동안 억제해왔던 학생과 재야인사들의 대북 교류 노력에 협조하고 권장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북한이 제의했던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학술토론회라든가,지난해 8월의 범민족대회 예비회의에서 국내운동권과 해외동포들이 제의한 남북 국토종단 순례행사에 관한 제안등에서 정부의 그러한 정책의지를 읽을 수 있다.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한관계에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던 우리로서는 정부의 이러한 자세를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 뒤따르게 될 후속조치들에 기대하고자 한다.
앞으로 있을 후속조치에 우리가 기대하고자 하는 것은 정부의 방침이 혼선을 빚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점진적으로 실현가능한 것,변화된 상황에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순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과 접촉·교류할 단체나 인사를 허용하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 일관성이 있어야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현재 정부의 입장은 남북교류지침에 따라 정부의 승인을 받을 경우는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면에서 현재 베를린에 파견된 2명의 전대협대표들은 안되지만 대학신문기자들의 방북은 허용하겠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시각에 따라서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선별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접촉노력에 혼선이 없도록 그 절차를 세부적으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우리 내부의 자세정립과 아울러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이 우리의 정책에 어떻게 하면 호응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문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은 국내외의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위축된 상태에 있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한 교류에 움츠러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제의에 대해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이 여러차례 말했듯이 북한이 꺼려하는 독일식 흡수통합이 통일의 모델이 될 수 없다면 북한이 이를 믿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이제는 우리 나름대로 명분이 있다고 대북 제의를 해서 역작용을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밝혔듯이 정부의 제안이 정치적 의도를 가진 통일구호만으로 비쳐져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만약 앞으로 정부의 제의가 소나기식으로 너무 광범하게 나오게 된다면 개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대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는 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점진적으로 실현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정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교류의 폭을 넓히겠다는 기본태도는 바람직하지만 남북관계는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인 바탕에서 추진한다는 전제밑에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도록 단발적이거나 파격적인 제안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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