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측근비리 特檢 거부할 명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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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의원들이 연일 노무현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고 있다. 한나라당 측은 어제도 국회 예결위에서 한 측근이 대선 후 기업에서 9백억원을 받았다는 등의 의혹들을 쏟아냈다. 정부 예산을 심의해야 할 국회 예결위가 이처럼 뚜렷한 근거가 뒷받침 안 된 폭로전으로 치닫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소추도 할 수 있는 국회 의석의 3분의2가 찬성한 특검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할 뜻을 시사하고 있으니 한나라당만 나무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런 폭로 내용이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과정에선 전혀 드러나지 않아 진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송광수 총장 체제의 검찰이 들어선 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혐의와 공소장의 혐의 내용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와 검찰 발표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 한나라당 주장의 신뢰성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괴리를 느낄수록 검찰이 측근 비리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사그라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盧대통령은 그제 측근 비리를 확실히 밝히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면서도 검찰에 더 수사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盧대통령은 측근 비리 수사를 위해 어떤 협조를 해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盧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솔직하게 진실을 토로하도록 지시했다면 검찰 수사를 수개월씩이나 질질 끌 이유도 없다. 盧대통령은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하도록 독려하기는커녕 혐의를 받고 있는 측근들을 '동지' 운운하며 감싸고, 의혹을 받고 있는 지인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그 사람과 함께 라운드해서 수사 검찰에 부담을 안겼다. 그러고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측근 비리 특검의 본질은 진실을 얼마나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특검법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까닭이다. 그것이 진실에 접근하는 당당한 방법이다. 굳이 특검보다 정부의 손으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뜻이라면 특검 수사 전에라도 측근들이 진실을 고백할 시간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