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희구세가 안겨준 압승/민자는 겸허하고 야는 반성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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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권당이 예상 이외의 압승을 거두고 야권이 전반적으로 퇴조현상을 보인 이번 광역선거 결과는 국민들 사이에 「5월시국」에 대한 충격이 투표성향에 크게 작용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곧 여당에 몰린 표가 적극적 지지의 표현이기 보다는 시국에 몰린 소극적·반사적성격(negative vote)을 짙게 깔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은 승리를 거둔 여당이나 실패의 고배를 마신 야당에 다같이 겸허한 교훈으로 받아 들여져야 할 이유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 해도 여당은 압승을 거둘만한 치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6공 들어 정부·여당이 보인 기본정책 입안의 난조현상,치안·물가·주택문제등 민생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고조,더 가까이는 의원뇌물외유사건,수서비리 및 강경대 치사사건으로 유발된 5월 시국 등은 정부·여당에 마이너스 요인을 훨씬 더 크게 안겨줬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여당후보에게 지지표가 몰렸다면 그 직접적 동기는 시국불안에 대한 안정희구 성향이 투표의 주조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당은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이것이 곧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리라고 자만하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이런 민의의 방향에 따라 충실히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야당은 그들대로 이번 선거결과에서 민심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민자당의 압승에는 시국의 충격 말고도 뚜렷한 대안이 야권에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신민당과 민주당은 시국이 혼란해지면 그것이 곧 자신들에게 유리하리라는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안정속의 개혁」을 표방하면서도 도심지에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면 그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스스로 내건 제도권 정치집단으로서는 자가당착임을 깨달아야 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를 두드러지게 외면한 현상은 여권의 난국과 사회의 혼란이 곧 야권의 지지 증가로 이어진다는 과거의 도식이 더 이상 실효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재야세력의 제도정치권 진입은 우리정치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한 일로 판단되지만 여야가 야합해서 만들어낸 배타적 선거법과 그들 자신의 조직미비 및 안정희구의 대세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국민의 판단은 내려졌다. 10% 안팎을 맴돌던 여당의 지지도는 이번 선거로 과반수를 넘게 되었다. 비록 광역선거의 성격상 이를 곧 중앙당과 정부에 대한 지지로 직결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권에 대한 깊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대다수는 일단 여권을 차선의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 여망에 성실히 답해야 할 것이다.
그 첫째 과제는 지금까지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국정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해온 정책수립의 파행성을 탈피하고 개혁의지를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이는 세 유리하면 곧바로 밀어붙이기로 나가고 세 불리하면 움츠러 드는 소아적 행태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야권에 대해서도 당부하고자 한다. 정치권이 나라안 문제만 가지고 정쟁수준의 다툼만 일삼고 있는 동안 나라의 장래를 결정지을 큰 변화가 주변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광역선거에서의 실패를 놓고 또다시 그런 수준의 다툼으로 되돌아 선다면 정당정치는 공멸한다는 교훈을 이번 선거결과에서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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